본문 바로가기

PKU/캠퍼스&라이프

대학에서 보낸 1년 1개월, 그 가벼운 시간에 대한 반성

대학에서 보낸 1년 1개월, 그 가벼운 시간들에 대한 반성

1.
젊은 이들에게
쓰러지는 것은 기꺼이 용서해 주노라. 다만 늘 높은 곳을 향하여 노력하라! 너는 날기에는 너무 무거울지 몰라도, 결코 노력하기에는 너무 무겁지 않다.
                                                             - 괴테

내가 북경대학에서 보낸 시간이 어언 1년 1개월. “대학에선 공부 안 해도 되겠지.” 라며 방심하고 있던 나에게 시간은 빠르게 그리고 스치듯 가벼이 지나가 버렸다. 참을 수 없는 가벼움으로. 괴테의 말을 되새기며 아주 가끔 나는 내 정체성에 의심이 생긴다. 왜 나는 날기는커녕 노력 하기 조차 이리도 무거운지. 무엇이든 생각하기 귀찮아진 머리통, 무거운 눈꺼풀, 무거운 두 팔과 두 다리. 그리고 가볍게 스쳐가는 시간에 반해 무거워 지기만 하는 내 자신에 대한 조용한 절망감……      

나는 대학생이 되면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게 될 줄 알았다. 주입식 교육이 아닌 토론하는 수업과 그에 바탕을 둔 멋진 레포트, 재미있는 동아리 활동과 친구들과 함께 가는 배낭 여행…… 고등학교 때부터 다른 소중한 꿈들과 더불어 사실 보다 더욱 사실같이 몇 번씩 머릿속으로 그렸었던 광경들이다. 그러나 막상 겪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理敎에서 몇 백 명씩 같이 청강하는 교양수업은 나를 잡담으로 혹은 소설책으로 이끌었다. 어떤 전공수업은 따분하기가 고등학교 화학과 맞먹는다. 게다가 학점은 도대체 무슨 기준으로 하사 하시는 건지 선생님의 채점 방식에 종종 의심이 생기곤 한다. 밤새서 쓴 레포트는 다 읽어 보기나 하시는 건지. 유학생에게 널리 애용되는 추천(?) 교양수업 리스트는 도전과 자유로움이 배제된 학점 지상주의와 편리함의 극치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유학생에게만 널리 이용되는 건 아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풍선에 바람 빠지듯 가면 갈수록 수업에 학교에 모든 것에 흥미를 잃어갔다. 무기력증에 빠져 아무것 에도 몰두하지 못하게 되어 버린 나 자신에게도……

2.
벌떡 일어나 여건을 찾아 나서는 사람, 여건이 갖추어 지지 않았을 때 스스로 여건을 만들어 내는 사람만이 세상에서 승리 할 수 있다.
                                                          - 조지 버나드 쇼

이 가볍디 가벼운 1년 동안 얻은 것이 있다면 바로 정말 사랑하는 친구들과 주체성의 중요성을 알게 된 것이다.
대학은 들어 올 때는 한어, 수학, 영어, 그리고 역사 등의 성적을 척도로 학생을 판단한다. 하지만 1년여의 대학생활을 통해 진정 중요한 것은 지식의 수준이 아닌 개인의 주체성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랜 시간 받아온 타율에 의한 교육의 사고방식을 떨쳐내고 자율적으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나가는 창조적인 사람만이 대학생활을 꽉 차고 멋지게 보낼 수 있다.
벌떡 일어나 찾아 나서는 사람만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넘쳐나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하고 집에서 뒹굴 거리거나 술자리만 전전하는 대학생들에게 치열한 삶은 없다. 높은 학점, 동아리 활동, 풍부한 인간관계, 다양한 취미생활, 유익한 실습 등은 주체성 있고 부지런한 사람들 에게만 허용된다. 

3.
높이 오르라. 멀리 오르라. 여러분의 목적지는 하늘이다. 여러분의 목표는 별이다.
                                                   - 윌리엄스 대학 기념비에서

수준 높은 학문은 복습과 예습을 통해서야 그 깊은 속을 열어 보여준다. 후회 없는 대학생활을 위해서는 동아리 활동과 취미생활을 전에 일정한 수준의 학점이 버팀목이 되어 줘야 한다. 물론 학점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학점에만 치우치는 대학은 절대로 이상적인 학문의 장소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는 대학생이고 학문의 대해서 일말의 의무감은 가져야 하지 않을까? 아무리 대학의 환경이 그리 이상적이지 못해도 말이다. 이상적이지 않다고 우리의 멋진 대학생활을 포기해 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학점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멋진 대학생활을 위해서 커다란 목표를 위해서 우리는 공부해야 한다. 

4.
세상의 유일한 죄악은 평범해지는 것이다.
                                                           - 마사 그레이엄

나는 가볍게 놓아버린 시간이 아깝다. 그리고 아직도 피동적인 습관에 젖어있는 나 자신이 아쉽다.
레포트 쓰러 도서관에 가야지 하고서도 기어이 몇 일 앞두고 집에서 인터넷을 뒤지고 있는 내가, 토플 준비한다며 부산 떨며 나름대로 맺은 결심이 작심삼일에 그쳐 버리는 내가 그리고 마치 손에 쥔 모래알처럼 흩어져 내리는 시간들이 아쉽다. 하지만 이제 후회, 아쉬움, 절망과 질투로 범벅 되어 있는 시간들은 흘려 보내고 이제 나는 더욱 커다란 세상에 나가는 그날을 위해 노력하려 한다. 또 다시 맞는 가을. 나는 이른 아침부터 수확의 계절 가을의 풍성함을 담아 혹은 그 씁쓸함을 담아 기사를 쓰고 있다.

대학에 입학해 불안정한 미래의 두려움과 자기 자신에 대한 자괴감으로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다면 스스로 에게 고하라. 평범해 지지 말자고. 젊음과 평범함은 공존 할 수 없다.

글_ 한혜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