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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KU/캠퍼스&라이프

사랑은 전동차를 타고

사랑은 전동차를 타고

 나와 내 남자친구는 얼마 전 600일을 맞이했다. 600일……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세월이겠다. 돌이켜 보면 600일 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던 것 같다.

 우리는 북경대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서로를 알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입시학원을 다니면, 하루 종일 학원에서 시간을 보내게 되는데, 나는 바로 이때 남자친구를 만났다. 수험생 시절엔 그저 좋은 친구였다.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역사를 꿰고 있는 남자친구는 항상 나를 위해 역사 퀴즈를 내며 나를 훈련시켰고, 나는 내가 잘하는 수학을 남자친구에게 가르쳐 주었다. 시험 2주전 나는 남자친구의 고백을 받았고, 그때부터 우리의 러브 스토리가 시작되었다. 우리의 교제 사실을 알게 된 선생님들은 서로 쳐다보지도 말고, 말도 하지 말고, 그저 시험만 치고 사귀라며 신신당부하셨지만, 불타는 우리의 사랑을 막을 사람은 없었다. 2주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는 점심 후 디저트를 먹어야 한다는 핑계로 삼십 분씩 걸려 스타x스까지 걸어가 커피 한잔씩을 마시고 오곤 했었다. 우리를 믿고 계신 부모님께는 죄송했지만, 왠지 난 공부도 연애도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시험 결과가 발표되던 날, 다행히 둘 다 일 지망에 붙어 서로 부둥켜안고 좋아했었다.

 입학 전까지 계속 떨어져서 전화만 하며 지내다가 개학 후 대학생으로 변신한 서로를 보고는 더욱 더 설레었다. 처음엔 집이 매우 가까워서 거의 매일 붙어 다녔다. 하지만 서로 과가 다른 탓에 모임도 다르고, 만나는 사람도 서로 달라지면서, 고비를 겪게 되었다. 대학생활을 처음 겪어보는 터라 적응도 안되고 거기서 오는 스트레스와 중국 최고의 학생들만 뽑아다 놓은 북경대에서 한국 유학생으로 살아가야 하는 스트레스란 굉장히 견디기 힘들었다. 인간관계, 그리고 성적…… 그 무엇 하나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왠지 모자라는 시간이 다 남자친구 탓인 것만 같았고, 하루가 멀다 하고 싸우게 되었다. 한때는 남자친구는 나 몰라라 버리고 과 모임, 동아리 모임, 친구들 모임만 죽어라 나갔었다. 하지만, 대학생활의 인간관계는 고등학생들과는 달랐고, 거기에 적응하지 못한 나는 방황하며 아파했었다. 상황이 여기까지 다다르자 남자친구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 나는 점점 남자친구에게 기대고 의지하게 되었다.

 연애를 해 보신 분이라면 누구라도 알다시피, 남자는 변한다. 아무리 착한 남자라도 변한다. 내 착한 남자친구는 당연히 변하지 않을 거라고 자부했던 나는 이번 학기 초 굉장한 시련을 겪었다. 내가 학교 기숙사로 들어오면서부터 남자친구와의 왕래가 뜸해진 것이다. 일학년 때는 집이 가까워서 그랬는지 아님 나를 지금보다 더 좋아해서 그랬었던 건지, 항상 나를 데리러 오고 데려다 주고 했던 남자친구는 변해버렸다. 미국 발 금융위기를 들먹이며 택시는 못 타고 오겠다고 하고, 버스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고 사람도 많아 힘들다며 오기를 꺼려했다. 결국 내가 남자친구네 집 쪽으로 나가야만 만날 때가 많아 졌고, 심지어 만나지 않는 날도 많아졌다. 그리고 그에 따른 나의 불만도 커져만 갔다.

매일 친구들에게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를 외치던 나도, “왜 이렇게 믿음이 없어”라고 외치던 남자친구도 다 지쳐가고 있던 어느 날! 우리에게 돌파구가 생겼다. 그건 바로 “전동차”였다. 한국에선 생소하지만, 중국에서는 매우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움직인다. 자전거에 모터를 달아서 전기 배터리의 힘으로 페달을 밟지 않고 빠르게 갈 수 있도록 만든 것이 전동차다. 최고 속도가 30km/h 정도 밖에 되지 않지만, 정말 요긴한 교통수단이다. 북경에서는 어딜 가든지 전동차를 발견할 수 있다. 교통이 혼잡해 차대신 전동차를 사는 가족들도 있다. 나도 항상 봐오던 전동차였지만, 나와 남자친구 사이의 윤활유 역할을 해줄 수 있으리라곤 생각도 하지 못했다.

 고 환율 시대에, 전동차를 사는 건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예전에 용돈으로 한국 돈 50만원을 받으면 중국 돈 4000원이어서 먹고 싶은 것은 다 먹고, 다니고 싶은 곳은 다 다닐 수 있었다. 하지만 갑자기 오른 환율 덕택에 이젠 한국 돈 50만원 부치면 중국 돈 2500원도 되지 않을 때가 있으니……사실 밥 먹는 것도 마음껏 먹지 못하는 실정이어서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난 우리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남자친구는 전동차가 생긴 후 하루에 2번도 넘게 나를 보러 온다. 다시 600일 전으로 돌아가 새로 사귀는 듯한 설레임도 든다. 우리는 전동차에게 “쌩쌩이”라는 이름도 지어주었다. 난 기분이 좋지 않을 때면 혼자도 좋고, 남자친구랑도 좋고, 무작정 쌩쌩이를 끌고 나가 드라이브를 즐긴다. 가끔 쌩쌩이를 몰고 학교 근처 쇼핑몰 밀집지역에 나가 색다른 데이트를 즐기고 올 때도 많아졌다. 교통이 많이 혼잡스러운 북경이지만, 전동차만 있으면 어디든 오케이! 막히지도 않고, 간편하고, 돈도 절약되고! 한국에서였다면 느껴보지 못했을 색다른 즐거움이다. 난 요즘 쌩쌩이 덕분에 너무 행복하다!

글_ 박안나
PKU blog 고정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