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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KU/칼럼

무너지는 상식의 보루

무너지는 상식의 보루

대학교 일학년 때였다. 친구네 집에 누워서 이런 저런 얘길 하다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얘길 꺼냈다. 사학년인 내가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그 친구의 반응이 너무 놀라웠기 때문인데, 그의 대답은 이랬다. “걔가 누군데?”. 그땐 이런 주제를 가지고 상식이 어쩌니 해줄 생각은 꿈에도 못하고 다만 신기한 녀석, 하고 욕을 좀 해준게 다였다.

그런데 그 후로도 가끔씩 내가 아는걸 상대가 모를수도 있다는 당연한 사실이 새롭게 다가오곤 했다. 한번은 코트와 잠바에 대해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중 한참 조용하던 친구가 알고보니 코트와 잠바를 구분 못하는 것이었다. 그는 우리가 소문낼게 두려웠는지, 배가 아플때까지 웃고 있는 우리를 사망 직전으로 몰아갔다. “나도 알아! 코트는 영어고 잠바는 한국어잖아”. 난 정말 웃다가 죽는줄 알았다.
 
내가 상식에 대해 어떤 위기감 같은걸 느낀 계기는 체 게바라였다. 말끝에 체 게바라 얘기가 나왔고, 친구는 체 게바라가 누군지 몰랐다. 체 게바라가 아르헨티나 출생의 의사 출신 혁명가이며, 쿠바 혁명과 베트남 전쟁에서 게릴라전을 맡았던 반제국주의자이자 반미운동가라는걸 다 알라는게 아니다. 그냥 그의 이름과 그는 혁명가였다, 라는 것만 알아주란 것인데 그는 그런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다음날 다른 친구 방에서 밥을 먹다가 또 체 게바라 얘길 꺼냈는데 그 친구는 자기도 모른다고 했다. 북대에서 체 게바라를 모르는건 너희 둘밖에 없을꺼야, 라며 웃다가 문득 혹시 모르는 사람이 더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이런 얘기가 하나도 안 웃겨졌다. 백번 양보해서 체게바라는 모를수도 있다고 치자. 하지만 만약 옛날처럼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모르는 사람이 또 있다면 어떨까?

그후 한달여간 사람들에게 “미안하지만…” 으로 시작하는 히데요시와 체 게바라에 대한 질문을 해보았다. 체 게바라를 모르는 사람은 정말 많았고, 한 술자리에서 8명중 두명이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모른다는 말에 술이 확 깨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농담이었겠지만 술자리에 있던 친구는 이런 말을 했다. “아, 도요타 사장요?”. 그 외에도 대사관이 개인 회사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고(그는 주식회사 대사관은 여권을 만드는 회사라고 설명했다) 2007년인 지금 우리는 X세대 라고 표현하는 사람도 있었다(10년전에 타임머신을 타고 왔나보다). 굳이 한국과 비교하자면, 한국 대학생중에 도요토미 히데요시나 체 게바라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내 생각엔 없을것 같다.

처음엔 교양이나 매너같이 좀 우하하고 대학생다운 주제로 글을 써보고 싶었다. 하지만 상식과 지식이 몸에 배여 자연스럽게 행동으로 나오는게 교양이고 매너인데 아직 우리는 교양을 얘기하기엔 좀 멀리 있는것 같다. 상식이 많다고 교양이 있어지는건 아니지만 상식 없이는 교양도 매너도 있을수가 없다. 

꼭 역사나 철학, 문학같이 좀 ‘있어보이는 것들’을 잘 아는것 만이 상식이라는게 아니다. 상식이란 보통 사람으로서 가지고 있을만한 일반적인 지식이니, 다방면의 잡다한 지식이 다 상식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상식이 부족한걸까. 물론 이런 핑계를 대볼수도 있겠다. 많은 유학생들은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않았다, 우린 한국 티비를 보기도 힘들고 아침마다 한국 신문을 받아보지도 않는다, 라고. 물론 한국에 있지 않기 때문에 한국의 여러가지 일들에 대해선 아무래도 한국 학생들 보다는 부족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누군지도 모르고 대사관이 사기업이라고 생각하는 데엔 어떤 핑계도 통하지 않는다. 내 생각엔, 모르는건 죄가 될 수도 있다.

걱정되는건 졸업 후 한국에 돌아가거나 취직하거나 한 후에, 정말 어른이 된 우리들 중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있을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지금은 학생이니까 그냥 웃고 넘어갈수 있겠지만 성인이 된 우리중에 누군가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근데 누구에요 하고 옆사람에게 물어보게 된다면 얼마나 창피하겠는가. 다들 바쁜겠지만 그래도 책도 좀 읽고 인터넷도 두루두루 좀 하고 그러면 좋겠다. 여기서 여기까지가 대학생때 알아둬야하는 상식이요 하는 책같은건 없으니까.

다행히 우리에겐 중국에 있다는 커다란 장점이 있다. 중국이나 주변국가에 대한 지식 만큼은 한국 학생들이 우릴 따라올 수가 없지 않겠는가. 그들이 중국의 사회 구조라던가 원지아바오니 지아칭린이니 하는 사람들을 알리가 없으니까. 이렇게 보면 한국 학생들과 비교해서 오히려 우리가 더 많은 것들을 알수 있고 알아야 하지 않을까? 인터넷에서 유학생들 욕하는 기사에 발끈하지 말고, 다들 아무 책이라도 좀 더 읽고 배울수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다 졸업하고 나서, “유학생들은 어렵게 공부해서인지 아는것도 많고 특히 더 매너와 교양이 있다” 하는 말을 들으면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글_ 백진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