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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KU/칼럼

‘if’가 들어가면 역사는 소설이 된다 -宫(궁)

드라마 속 역사이야기
‘if’가 들어가면 역사는 소설이 된다

‘if’가 들어가면 역사는 소설이 된다
그러나 만약, 아주 만약에 아직도 왕이 존재한다면? 한국이 입헌 군주국아래 새롭게 태어났다면? 드라마 “궁”은 모든 소녀의 로망, 로얄패밀리가 아직도 건재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재미있는 표정과 유행어에 뇌가 마비될 즈음, 불현듯 떠오른 것은 “궁”에 조용히 출연하는 갖가지 역사코드였다. 가벼움 속의 진지함. 바로 한민족 반만년 역사의 막을 수 없는 그리고 끊어지지 않을 영원한 원동력이다.

한국 왕족들의 본적은 ‘경복궁’이다.
정말 동사무소에 가서 본적을 뽑아보고 싶다. 본적이 ‘경복궁’이라니! 하지만 바꾸어 생각해보면 사실너무도 당연하지 않은가? 왕(王)은 궁(宫)에서 살아야 하는 것이 무엇이 이상할까. 드라마 속에도 세자 신군과 세자비 채경 달랑 2명이 사는데 집은 고래등 만한 으리으리한 궁전이 아닌가. 거기다가 ‘세손 제작 음모’에 휩싸인 대왕대비에 의해 두 어린 부부가 떠밀려 나온 곳도 바로 창경‘궁’ 이였다.
그러나 한국인 중에서 서울에 있는 모든 궁전에 다 가 본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프랑스의 베르사이유 궁전이나 스페인의 알함브라 궁전, 심지어 그 작은 나라 모나코의 왕궁은 가 봐도, 수도 서울에 있는 궁궐은 다 본 적이 있을까? 몇 개의 궁궐이 있었는지 알까? 도전 골든벨 문제로 적극 추천하고 싶다. 만약 그들이 골든벨을 못 울리게 할 고 난이도의 문제를 찾는다면.
조선시대, 한양에는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경희궁 이렇게 다섯 개의 궁이 있었다. 정궁(正宫)인 경복궁과 이궁(异宫)인 창덕궁은 500년 조선왕실의 권위와 상징이었다. (여기서 이궁(异宫)은 영국의 윈저성처럼 정궁(正宫)외에 짓는 보조 궁궐이었다.) 창경궁은 세종대왕 때 건립된 것으로 그 법전인 명정전은 한국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법전이다. 덕수궁은 임진왜란 때 경복, 창덕, 창경궁이 모두 타버려서 선조가 거처할 곳이 없어, 가장 으리으리한 월산대군의 집을 고쳐 궁으로 만든 곳이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가장 모르는 경희궁은 바로 광해군이 만든 것이라고 하나 안타깝게도 지금은 궁궐의 모습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파괴가 심하다. 한국인은 궁(宫)에 무심하면서 궁(宫)에 열광하는 특이한 ‘민족’이다.

신군은 하늘? 채경이는 땅?
드라마 속에서 신군은 말한다.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궁에서만은 유교이념이 기와 한장한장까지도 배어들어있다고. 하지만 사실 궁에서의 내명부, 즉 여인의 권위가 어디까지나 땅에 머물렀다고는 할 수 없다. 물론 왕은 세상의 중심이자 만 백성의 어버이이지만, 그런 왕을 다스리는 건 2명의 여인, 모후(母后)와 왕후(王后)가 아닌가. “궁”에서도 대왕대비가 비운의 왕자 율군을 대군으로 책봉하고 혜경궁을 대비로 승격시키는 일의 주모자임을 한 눈에 알 수 있지 않은가. 그녀는 왕을 능가하는 슈퍼 울트라 파워를 가지고 있는 것 이다. 물론 모두가 율군의 어머니 혜경궁의 음모이지만, 그녀의 악렬한 악녀캐릭터가 더욱더 강력히 “여인천하”의 조선을 증명하고 있다. 원래 드러나지 않는, 그러나 공공연히 알고 있는 그 것이 바로 권력이니까.

왕위다툼vs애정다툼
신군과 율군, 그들은 미모다툼으로도 모자라 왕위를 놓고도 한바탕 씨름판을 벌였다. 겉으로는 기사도 정신의 표현이라고 얼토당토않은 변명을 하지만, 본질은 왕관을 놓고 벌이는 현대판 왕자의 난일 뿐이다. 조선 역대로 보면, 태조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이 일으킨 왕자의 난을 시작으로, 한일불법강제합방이 맺어지는 그 날까지 왕위다툼은 이미 식상해진 감자튀김 정도의 일일 뿐이다. 가장 근래에는 고종황제의 정비 명성황후의 아들과 영보당 이씨의 아들이 서로 왕위싸움을 벌였었다. 뭐, 본인들이 서로 치고 박은 것은 아니지만, 사실 그들의 왕위 다툼 뒤에는 명성황후와 흥선대원군의 권력다툼이 있었다. 옛말에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이라지만, 정치 앞에서는 위고 아래고 아무것도 없는 듯하다. 결국 승리는 명성황후에게로 돌아갔고, 그녀는 성공적으로 순종황제를 등극시켰으니까.
채경과 효린, 그들은 현대판 신데렐라 자리를 놓고 선혈이 낭자하는 혈전을 벌였다. ‘자칭 첫사랑’ 효린이가 잠시 주춤하는 틈을 타서 채경이가 신군의 마음을 점령하기 시작했는데, 조선시대에도 정비와 후궁들의 싸움은 끊임이 없었다. 하지만 대부분이 당파싸움의 희생물이었다. 모두가 알고 있는 인현왕후와 장희빈(그녀도 사실 한 때는 장경왕후였다)의 이야기는 겉으로 보기에는 마치 숙종을 둔 두 여인의 암투인 것 같지만, 그러나 사실은 노론과 소론의 세력 싸움 및 세력교체에 놀아난 인형들이었을 뿐이었다.  왕위다툼으로나 애정다툼으로나 정말 조선시대 궁은 하루 종일 너무나 바빴을 것이다.

다시 현실로 돌아오면
경복궁은 지금 ‘터엉’하니 비어있다. 하지만 일제가 왕족을 내몰았다고 해서 왕국 조선의 역사가 사라질 수 있겠는가?  비록 창경궁이 동물원이 되었던 적이 있었다지만 의식마저도 동물들이 먹어버렸다고 오산하면 큰 코 다칠 일이다. 그 역사들은 한 알 한 알 우리 혈액 속에서 흐르고 있다. 그러나 21세기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은 서양의 것만이 유행을 이룬다고 착각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할 일은 우리의 후손이 더 이상 역사에 “if”를 달지 않게 잔뜩 긴장하고 힘주어 멋진 한국을 빚어내는 것이 아닐까.

글_ 박초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