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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KU/인터뷰

생명공학부 유일한 한국인 여학생 -People in PKU

People in PKU
혼자라 힘들지 않냐구요-? 천만에요, 오히려 혼자이기에 더 좋은걸요
생명공학부 유일한 한국인 여학생 김다인

지난 연말,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연구성과와 이미 밝혀진 그의 논문 조작 사건 등으로 이름만 들어도 난해하던 생명공학(Biotechnology)이라는 학문 및 기술은, 조용히 급속도로 성장하던 분야에서 범국민적인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인기 분야로 순식간에 발돋움 하였다. 우리 나라 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주목하고 있는 생명공학은 전문 분야이기 때문에 대단한 노력과 열정이 있지 않고서는 함부로 도전할 수 없는 학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곳곳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한국 유학생들을 심심치않게 볼 수 있는 문과 중심인 북경대학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소리 없이 생명공학을 공부하는 학우가 있다고 하여 찾아가 보았다. 화장기 없는 깨끗한 얼굴에 꾸미지 않은 듯한 수수한 옷차림, 부끄러운 듯 하지만 환한 미소가 주는 따뜻함과 여유, 작은 체구지만 왠지 모르게 풍겨오는 당찬 자신감. 튀지 않는 외모지만 군계일학처럼 빛나는 북경대학 생명공학과 04학번 김다인 씨, 그녀와의 인터뷰는 그렇게 살가운 인사 한마디를 건네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혼자만 유학생이면 힘들지 않냐구요-?
다른 문과 학생들은 한국인 선배들과 동기들의 도움을 받아 학교 생활에도 빨리 적응하고 유학 생활에 유용한 학습 관련 노하우도 쉽게 습득할 수 있지만, 이과생들은 같은 처지에 놓여져 있는 한국 유학생은 물론이고 다른 외국 유학생도 찾아보기 힘든 환경에서 학교 생활에 적응하기 힘들지 않을까…. “대신 교수님과 중국 친구들의 도움을 많이 받죠. 처음 어려운 공부 때문에 힘들어할 때 담임 교수님이 03학번에 한국인 유학생 선배와 싱가포르인 유학생 선배의 연락처를 주셔서 만나봤었는데 두 분 모두 중국 친구들 속에 뭍혀서 중국인처럼 공부하고 생활하시더라구요. 저도 선배분들에게 의지하기보단 중국 친구들에게 다가가 먼저 도움을 청했죠.” 처음엔 그녀도 교수님이 무서워서 모르는 것이 있어도 혼자 끙끙댔었단다. 중국 친구들과의 토론이 많아지고 공부에 더 열정을 갖기 시작하면서 교수님께 질문하고 문제제기하는 것이 이제는 너무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 되었다. “질문을 하면 친구들이든 교수님이든 물어보지 않은 부분까지도 너무나도 친절하고 상세하게 설명해주세요. 제 공부에 있어서 언제나 정말 큰 도움이 되지요. 모른다고 가만히 있으면 끝까지 모르게 되고, 계속 물어보면서 알고 싶어하면 문제도 해결됨과 동시에 친구들과 더 가까워지고 교수님도 더 관심을 갖고 지도해주시려 한답니다.”

biotechnology, 그 수 천만 가능성의 한 접점
고등학교 시절 의대에 진학해 의사가 되는 것을 꿈꾸어 왔지만 그렇다고 그녀는 이 전공을 택한 것을 후회하지도 않는다.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차세대 기술로 떠오르는 분야로 주목받아 보통 사람들에게는 실용적이고 경제적 가치가 있는 학문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김다인 씨에게 있어 생명공학은 오히려 그 이상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 3학년이 되면 생명과학, 생명기술(생명공학) 두 개의 전공으로 나뉘우는데, 아직은 전공에 기초가 되는 생물과 화학을 위주로, 그 밖에 물리, 컴퓨터, 통계학 등을 배운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좋아했던 생물과 화학을 더 깊이 공부할 수 있고, 수업 외에도 실험, 실습 등이 많아서 배운 내용들이 머리에 쏙쏙 들어와 완전한 개념을 잡는데 도움이 된다. 처음에는 무섭기만 하던 해부 시간에도 이제는 토끼, 두꺼비, 지렁이, 심지어는 사람표본, 바퀴벌레, 상어 해부까지 익숙하게 해낼 수 있고, 무기화학 시간에 녹차잎에서 카페인을 추출하거나 아스피린을 만드는 것 역시 그녀가 생명공학의 매력에 푹 빠질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얼마 전에는 유산균 약이 분해되지 않고 장까지 무사히 도달할 수 있도록 캡슐로 감싸는 것, 동물의 어느 부위를 이용해서 당뇨병 약을 만드는 것도 생명공학 기술을 이용한다는 기사를 읽었어요. 생물의 특징을 이해하고 그것을 근거로 약품을 개발한다는 것이 참 재미있어요.” 라고 그녀는 눈을 반짝인다.
매 수업에 뒤따르는 실험 외에도 방학 중 실습 기간도 있는데, 지난 여름 방학 동안의 실습은 다인 씨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다. 열흘 동안 바닷가에서 같은 과 중국 학생들과 합숙하며 바다 생물들을 채집, 박제하고 조별로 프로젝트를 하는 과정에서 중국 친구들과 돈독한 우정을 쌓게 되었다. 과에서 보통 아침 1교시 수업이 많아 중국 친구들과 교대로 일찍 수업에 나와 서로 앞자리를 맡아주기도 하고 수업이 끝난 후 모르는 문제를 물어보고 토론하며 도움을 받기도 한다. “중국 친구들을 보면, 정말 보고 배울 점이 많다는 생각이 들어요” 수업 시간이나 실험, 실습 심지어는 평소에도 늘 그들을 지켜보며 자신을 되돌아 본다는 다인 씨, 우수한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면, 열심히 하려는 노력보다 성적만 잘 받으려는 욕심이 앞서있던 자신이 부끄러워져 더욱 학업에 집중하려는 열정이 생긴다고 한다. 한국 친구들이 많은 과에 있었다면 자신도 중국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유학생끼리만 노는 분위기에 휩쓸렸을 수도 있었겠지만, 항상 주변에 모범이 되는 중국 친구들이 있기 때문에 흐트러지지 않고 학교 생활을 할 수 있다고.
게다가 다른 문과 학과와는 달리 거의 모든 과목의 평가는 레포트보다는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로 이루어지고 노력 여부가 숫자로 드러나는 과목들이기 때문에 반드시 평소에 공부를 해둔다.

과연 어디서부터가 생명인가
황금비에 대한 논문, 진화론에 반대하는 논문, ‘노아의 홍수’ 이야기를 증명하여 성경의 창조론을 증명하려는 시도 등, 매번 논문을 쓸 때마다 다인 씨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얻은 자료를 짜집기한 논문이 아닌 남과 다른 자기만의 의견이 담긴, 때로는 기존 이론을 반박하고 새로운 견해를 펼치는 논문을 쓰려고 노력한다.
그녀는 ‘과연 어디서부터가 생명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 보았다. 생명공학 전문가들은 팔, 다리 등 원시선이 생성되기 시작하는 ‘수정 뒤 14일’ 부터 생명으로 보지만, 생명공학도 다인 씨는 정자와 난자가 수정한 직후의 수정란 상태부터 생명으로 봐야 한다는 기독교의 주장에 동의한다. 그런 이유에서 그녀는 낙태가 인간 생명을 파괴하는 또 하나의 살인 행위라고 생각하고 졸업 후에는 낙태를 반대하는 단체에서 활동하거나 여건이 되지 않는다면 그러한 단체에 적극 후원하기를 희망한다.
그녀가 이렇게 남들과는, 특히 기독교 입장과는 먼 중국 생명공학 학자들과는 많이 다른 스스로의 주장을 펼쳐 나갈 때면 교수님은 그녀에게 동의하냐 안하냐를 떠나서 존중해주며 논문에 대한 공정한 평가를 해주신다고. 그래서 그녀는 기죽지 않고 더욱 시야를 넓혀 여러 방면으로 문제를 생각하며 언제나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생명공학도가 바라보는 황우석사태
지난 해 한국을, 아니 전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황우석 사태’에 대해 생명공학도 김다인 씨는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냐는 질문에 그녀는 먼저 연구 성과가 있어야만 인정해주고 지원해주는 한국의 상황을 안타까워했다. 특히 생명공학 분야는 여러가지 가능성 존재하기 때문에 여러 각도에서 수차례 실험이 계속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많은 지원금이 필요하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국가 예산 중 많은 부분을 생명공학 연구에 투자하고 있지만, 한국인 학자들의 성과들이 끊임없이 세계적인 이슈를 만들고 있는 등 한국 생명공학계의 빠른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는 재정 지원 면에서 이를 뒷바침해주지 못한다는 것이 현실이다. 황우석 박사가 나쁜 의도를 가진 것이 아니었고 우리나라의 이러한 실정을 보면 그를 이해할 수 있다고 다인 씨는 말한다. 하지만 세계를 상대로 거짓말을 한 그는 비난받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난 멀티 플레이어 !
수업이 없는 날이면 학교 도서관에서 전공 서적을 빌려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고, 과학동화, American Science 등 과학 잡지도 즐겨 읽는다. 물론 그녀가 공부벌레처럼 책 속에만 뭍혀 사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한인 교회에서 만난 한국인 친구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가끔 과 중국인 친구들과 밥도 같이 먹고 소풍을 가기도 한다. 어릴 때부터 다루어 왔던 피아노도 그녀의 여가를 채우는 중요한 한 부분이며 그녀의 음악적 재능을 살려 지난 학교 元旦 행사 때에는 중국인 친구들과 아카펠라를 연습하여 공연하였다. 우루무치에 여행을 갔다 온 뒤 위구르어에 관심을 갖게 되어 친구로부터 화공대에 다니는 위구르족 친구를 소개받아 가끔 만나 위구르어 공부도 한다.
“얼마 전 한국에서 오신 EBS 관계자 분들의 통역을 맡았었는데, 그 분들과 함께 일하면서 전공 분야 말고도 다른 여러 분야에 관심을 갖고 이것 저것 다양한 경험을 많이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항상 시사에 귀를 귀울이고 진지한 생각을 많이 하려고 노력 중이예요.”

생명공학 분야의 한, 중 다리 역할 하고파
아직 졸업 후의 뚜렷한 계획은 없지만 그녀는 대부분의 중국 친구들처럼 미국에서 대학원에 진학해서 계속 생명공학을 공부하고 싶다고. 현재 북경대 생명공학과의 약 90%의 학생들은 졸업 후에, 생명공학 분야의 발전은 아직 초기단계에 있는 중국을 떠나 미국에서 선진 기술을 배운다. 그녀는 “얼마 전 학교 실험실 설명회에서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새 교수님들 여러 명이 소개되었는데, 이를 보면 아직 중국의 생명공학은 걸음마 단계이지만 전망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북경대 생물공학과는 과거의 생물학과를 모체로 신설되어 역사는 그리 길지 않지만 실험 기구와 실험실 모두 외국 전문가들에게 높이 평가 받았고 계속해서 실력있는 교수진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중국 국가차원에서 생명공학 발전을 적극 지원하는 데다가, 문과 중심의 북경대학이 퍼붓는 이러한 노력은 북경대 생명공학과의 무한한 성장을 믿어 의심치 않게 한다.
중국에서는 생명공학 전문 기술 용어를 영어나 독일어로 쓰는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모든 용어를 중국어로 사용하기 때문에 이 분야에 있어서 한국과 중국의 교류에 한국 유학생의 역할이 커지지 않을까 싶다. 이에 다인 씨는 “생명공학은 세계의 관심이 집중된 분야이고 앞으로는 더더욱 생명공학의 붐이 일 것이라고 전문가들이 예상하고 있는데, 문과에 비해서 이 분야의 유학생 수가 너무 적은 듯해서 아쉬워요.” 라고 말한다. “사실 접어두었던 의사의 꿈도 이루고 싶기도 하고 또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미국에서 생명공학을 더 공부하고 나서는 한국에 돌아가서 일하고 싶어요. 높은 지위에 오르기보다는 조용히 한,중간의 학술 교류의 통로가 될 수 있도록 열심히 공부할 거예요. 생명공학 분야의 한,중 양국의 다리 역할을 해내는 것이 제 꿈이예요.”


얼마 전 헌정 사상 첫 여성총리가 탄생하는 등 사회 각 분야에서 여성 진출이 매우 확대되어 가는 지금, 과거에는 여성이 ‘감히’ 발을 디딜 수 없던 영역 곳곳에서도 이제는 강력한 여성파워를 느낄 수 있다. ‘유학생 불모지대’나 다름없는 분야에서, 그것도 유일한 여학우로서 멈추지 않고 항상 자기 자신을 채찍질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김다인 씨. 어려운 공부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하는 보통 유학생들과는 달리, 중국인들에게 “한국 유학생인 나는 이런 견해를 가지고 있다” 는 것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려 애쓰는 그녀, 인터뷰 당시 들었던 그녀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시간이 지난 지금도 오롯이 남아 마음을 울린다.

오늘도 둘러보면 들리는 건 한국말뿐인 식당에서 밥을 먹고, 수업에 들어가도 손 흔들며 반갑게 인사할 중국친구 하나 없는 몇몇 한국 유학생에게 고하노니 유학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첫째도 용기요,둘째도 용기이다. 오늘도 자신의 무한한 잠재력을 믿고 300명의 학생 중 단 한명의 한국 유학생으로 열심히 자신의 내일을 그려가는 그녀, 그녀의 눈은 이미 중국을 넘어 세계를 향해있다. 지금의 땀과 노력이 빚어낼 그녀의 미래. 생명공학계의 전도유망한 학자로 먼 훗날 한국의 여성파워 대열에 합류하여 그 역량을 발휘할 그 모습을 기대해본다. 


 

글_김새롬  사진_이수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