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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NA/이슈

단오절 ― 어려운 문제, 쉬운 해답


지난 중추절(한국의 추석) 때의 일이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중국친구와 양국의 전통기념일에 대해 이야기 하던 중 친구가 갑자기 한국의 단오절에 대해 물어봤다. 평소 단오절에 관해 아는 바가 적었기 때문에 창포물에 머기 감기 등 단오절과 관련된 세시풍속만 간단히 알려주었다. 그럼 단오절의 유래를 아느냐는 물음에 중국 춘추시대 초나라 시인 굴원을 추모하는 기념일 이며, 쫑즈먹기와 용선타기 등 중국의 세시풍속에 대해 아는 대로만 대답했다. 그러자 중국 친구는 장난스럽게 그럼 왜 한국이 중국의 단오절을 빼앗아 갔냐고 물어보는 것이었다! 어리둥절해 있는 나에게 친구는 한국이 단오절을 유네스코 무형문화제에 등재한 사실을 알려주었다. 당시에는 처음 접하는 소식이었기 때문에 당황해서 잘 모른다고 얼버무렸지만 내심 마음이 편치 않았다.

 집에 돌아와서 중국 BAIDU에 단오절을 검색해 봤는데 결과는 더욱 놀라웠다. 한국의 단오절 유네스코 무형문화제 등재와 관련하여 중국 네티즌들의 격앙되고 감정적인 반응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한국이 중국의 전통문화를 강탈해 갔다’. ‘한국사람들은 굴원을 자신들의 조상으로 만들 계획이며, 심지어 공자를 한국이라 주장한다는 등의 근거 없는 정보들이 난무했다. 한국과 중국의 포탈사이트를 오가며 단오절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며 차차 단오절 논쟁의 진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이 단오절을 유네스코에 등재한 것은 이미 몇 해전인 2005년의 일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단오절 자체가 아닌 단오절을 기념하는 행사중의 하나인 강릉단오제가 등재된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단오절은 어떤 의미와 의의가 있는 기념일 이길래 양국간 첨예한 대립이 발생한 것일까?

 단오절의 유래는 중국 춘추시대 초나라 말엽에서 비롯되었다고 전해진다. 초나라의 정치가이자 애국 시인인 굴원이 자신의 개혁안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결국 초나라가 멸망하자 강물에 투신해 자결을 했다. 사람들은 배를 저어 그의 시신을 찾아 헤맸지만 발견할 수 없었다. 이에 사람들은 물고기들이 그의 사체를 훼손하지 못하도록 대나무통에 찹쌀밥을 넣어 강물에 던졌다고 한다. 그 이후 매년 음력 5 5일이면 초나라 사람들은 강물에 찹쌀밥을 던지며 그를 추모 했는데, 이것이 바로 오늘날 롱조우() 경주와 쫑즈(粽子)를 먹는 단오절 풍습의 유래라 한다.

롱조우(龙舟)경기


쫑즈(粽子)

  그런데 과연 오직 한 사람을 추모하기 위한 날이 수 천년 동안 전해져 민족의 전통 명절이 될 수 있을까? 중국 내에서도 단오절과 굴원의 상관관계, 단오절의 원류를 놓고 많은 논쟁이 발생했었다. 대표적인 예가 후난성(湖南省) 미뤄시(汨罗市)와 장쑤성(江苏省) 쑤저우시(苏州市)간 단오절 원조 다툼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굴원을 추모하는 단오제를 지내온 미뤄시(汨罗市)에 쑤저우시(苏州市)가 오자서(伍子胥)를 기념하는 대대적인 단오절 행사를 준비하며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오자서는 초나라에서 망명해와 오왕 부차(夫差)를 도와 패업을 달성한 춘추시대 오나라의 전략가이자 정치가이다. 간신들의 모함으로 오왕 부차에 의해 제거당한 뒤 음력 55일에 강물에 던져졌고 후대에 그의 넋을 기리는 제사를 지내온 것이 단오절의 유래이며, 오자서는 굴원보다 수백 년 앞선 인물이므로 오자서를 추모하는 행사가 진정한 단오절의 원조라는 것이 쑤저우시의 주장이다. 중국문화부는 501가지 국가지정 무형문화유산에 쑤저우 단오절을 포함시키면서 두 도시간의 뿌리 논쟁은 가속화 되어갔다.

                                                     굴원(屈原)

                                                 오자서(伍子胥)

그러나 굴원이 단오절의 원조이니 오자서가 원조이니 하는 논쟁은 무의미할 뿐이라고 중국 학계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굴원이나 오자서 외에도 동한(东汉) 효녀 조아(), 선정을 베푼 광시(广西) 지방관리 진림(陈臨), 용주를 이용해 수군을 훈련시킨 ()나라 구천() 지방에 따라 단오절 또한 다양하기 때문이다.  결국 단오절은 특정 인물을 기리는 기념일이라기 보다는 4~5천년전 남방 오월(吴越)족의 토템의식에서 출발했다는 것이 중국학계의 유력할 설이다.

 , 한국은 중국문화의 영향을 받아 이미 고대부터 단오절을 기념해 왔었다. 단오절은 고려시대 9대 명절에 속하였고, 조선시대에는 설날, 한식, 추석과 함께 4대 명절에 속하였다. 우리 조상들은 단오가 일년 중에서 양기가 가장 왕성한 큰 명절로 생각하여 창포물에 머리감기, 그네뛰기와 씨름대회, 단오제, 단오굿과 같은 행사로 풍속을 지켜왔다. 이처럼 한국은 지난 천 여 년간 고유의 민속방식으로 단오절을 기념해왔으며, 한국의 단오절은 굴원을 추모하는 중국의 풍습과 다르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창포물에 머리 감기
  


                                                        단오굿


                                                        씨름대회

한국과 중국, 혹은 중국 내 지역간 단오절에 관한 논쟁이 발생하는 것은 옳지 않다. 왜냐하면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단오절의 원조는 존재 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 학자들의 설명처럼 단오절은 특정인물을 기념하는 날이라기 보다는, 민족의 오랜 풍습이 정착되어 만들어진 기념일이기 때문이다. 보다 근본적으로 단오(端午) 자체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면 논쟁의 해답을 돌출 하기는 더욱 쉬워진다. 단오(端午)의 단()자는 첫 번째를 뜻하고, ()자는 다섯을 뜻하므로 단오는 초닷새를 의미한다. 단오절을 중오절(重午)이라고도 하는데, 중오는 오()의 수가 겹치는 55일을 뜻하는 것으로 양기가 왕성한 날로 풀이된다. 음양사상에 따르면 홀수를 양()의수라 하고, 양의수를 길수()로 여겨 양의 수가 겹치는 날은 특별히 기념해 왔다. (11삼짇날(33) ·칠석(77) ·중구(99) 등을 기념하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인데, 이러한 기수민속은 중국의 영향으로 동아시아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한국과 중국 모두 오랜 세월 조상이 행해온 대로 단오절을 기념해 왔으며, 그 방식이 문화와 풍습의 차이로 서로 달랐을 뿐이다.

이미 몇 년 전 발생한 논쟁거리지만 스스로 자료를 찾으며 단오절에 대해 정확히 알 수 있었다. 또한 한국과 중국은 오랜 세월 동안 밀접한 관계를 맺어 왔지만 상대방의 문화와 풍습에 대해 의외로 정확히 아는 바가 적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단오절 논쟁은 서로의 몰이해에서 발생한 해프닝이라 생각한다. 양국의 문화요소가 많이 겹치는 만큼 더 많은 논쟁거리가 발생할지 모른다. 앞으로 이런 무미건조한 논쟁으로 양국의 우호 관계에 흠이 가지 않도록 서로에 대한 존중과 이해가 필요할 것이다.

며칠 후 친구를 만나 단오절 논쟁에 관해 정리한 자료를 보여주었다. 그러자 중국 친구는 덕분에 중국의 단오절뿐만 아니라 한국의 단오절에 대해서도 알 수 있게 돼서 고맙다고 했다. 중국과 한국 또한 국가의 이해관계나 이념을 뛰어넘어 친구 사이간처럼 즐겁게 대화하며 서로의 문화를 배워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참고 기사>

 

단오절 법정휴일 지정 요청인민일보

중국도 단오절 세계문화유산 신청장강일보

한국 전통문화 세계화 HanStyle 박람회

단오절 지역간 원조다툼연합뉴스

端午节将成为外国文化遗产?人民日报

단오절은 우리의 명절” ‘ 중앙일보

不是迷信,而是不信 中国传统节日的尴尬南方周末



글_ 역사학과 공덕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