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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NA/라이프

중국에서 기차타기

 중국 유학생이나 중국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중국이 기차로 여행하기 좋은 나라라는 것을 한 번쯤은 들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만큼 고 거미줄 같은 기차노선이 광활한 중국대륙을 여기저기 이어주고 있으며 천차만별인 표 값이 보여주듯 각기 속도가 다른 기차들도 즐비하다. 중국에선 기차여행을 꼭 한번이라도 해보라고 추천하던 중국관련서적이 말하듯 필자 역시 ‘기차여행을 해본 적 없다면 중국여행을 논하지 말라’는 생각이다.

 


중국대륙지도-중국 영토는 한국영토의 44배이다

 

 필자는 중국유학생활 9년지기 빤쭝궈런(半中国人-그저 중국에서 오래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들 부르는데, 나는 뼛속까지 자랑스런 대한민국 국민이다!)으로써, 대학 들어오고 부모님과 떨어져 살기 시작한 근 2년부터 중국기차를 줄기차게 타게 됐다. 천진(天津)에 거주하시는 식구들을 적어도 한 달에 한번씩 찾아가기 위해서이다.

 

 처음 하는 일이 그렇듯이, 대학입시시험이 끝난 다음날 겨우 1시간 좌우 걸리는 그 기차를 처음 탔을 땐-아니, 처음 타기 위한 과정과 탑승시간 내내-나는 그 미지의 세계를 접촉하고 경험할 때 오는 유쾌하지 못한 혼란과 고통과 울분, 두려움 따위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기차 출발 10분전엔 탑승을 해야 한다는 것도, 심지어 기차역이 필자가 사는 곳에서부터 택시로 40분 가량 걸리는 곳이라는 것 조차 몰랐기에 나는 기차시간 10분전에 택시를 타고 “취베이징잔(去北京站-북경역으로 갑시다)!”이라고 외치는 무식한 당당함을 선보였던 것이다. 손과 어깨 등엔 입시준비 때의 생활용품이 가득 든 커다란 짐가방을 매고 들고 도착한 기차역에서 어쩔 수없이 기차표 시간을 바꾸기 위해 ‘转签’이라 적힌 창구에 갔고, 때는 그 많은 중국인들이 대거로 움직이는 노동절 시즌인지라(5월1일 ‘국제노동절’과 10월1일 ‘중국국경절’때 중국은 일주일 동안 쉬기 때문에 각각 4월말과 9월말 경 움직이는 인구수가 한국인은 상상을 하지 못할 정도로 많다. 중국 13억 인구가 움직이는 모습을 상상하면 왜 중국에 ‘인산인해(人山人海)’란 사자성어가 생겼는지 어렵지 않게 가늠해볼 수 있다) 가장 복잡하기로 유명한 수도의 기차역 모든 창구는 사람들이 밀어터지게 많았다. 생각해보라. 스무 살의 이제 막 입시를 끝내 몸에 짐가방이란 짐가방은 다 이고 들고 매고선 혈혈단신으로 족히 수백은 돼 보이는 중국인들과 치혈한 몸싸움(!)을 벌여야 했던 여자아이의 모습을. ‘노동절’이고, 각지 노동자들이 모인 수도이기에 아직은 사람들의 문화수준이 빈부격차만큼이나 심한 중국 수도의 기차역엔 도덕수준이 부족한 하급노동자가 즐비할 수밖에 없었고, 끊임없이 새치기와 밀어 제끼기를 당하며 근 두어 시간을 창구 언니 얼굴조차 못보고 휘둘리던 필자는 타오르는 분노와 악다구를 동력 삼아 이를 악물고 앞으로-앞으로 나아가 끝내 기차표를 바꾸는 쾌거 아닌 쾌거를 이루게 됐다.

 하지만, 두어 시간의 몸싸움을 끝냈다고 한숨을 돌리기엔 일렀다.

 

 원래 필자가 갖고 있던 표는 북경-천진 직행 기차표로써 거금 45위엔(2007년 당시 환율로는 6,7000원정도. 현재 환율로 따지면 10000원이 넘어간다)을 주고 산 티켓. 비행기 내부를 연상시키는 널찍하고 편안하며 일인 하나의 쿠션 좋은 좌석까지 갖추어 사오십 분이면 목적지에 도착하는 그러한 것이었다. 하지만 转签을 통해 바꾼 티켓은 수많은 역을 들르며 역시 수많은 사람들을 태우던 가장 싸고 낡은 기차의 표였던 것이다! 한 시간 반 동안 한걸음도 움직이지 못하고 사람들 사이에 껴서 옴싹달싹 못하고 진을 다 뺀 후, 또 숨통도 트이지 않게 많은 사람들을 짐 가득 들고 헤쳐나가 내릴 때 필자는 마치 지옥에 떨어져 유황불에 태워지곤 큰 바위에 온 몸을 눌리우는 고문을 받는 것과도 흡사한 정신적, 육체적 괴로움을 느꼈고 우여곡절간 기차에서 내리곤, 지금 생각하면 민망하지만, 그냥 목놓고 통곡을 했었다.

 

 이렇게 얘기하니 꼭 중국기차가 정말 못 탈 녀석같이 보이는데, 뭐 이건 내가 하필이면 노동절시즌에 기차를 처음 타보는데다 여자 혼자 짐도 워낙 많이 들고 있었고, 기차를 놓쳐 시간을 바꿔야 했던 데다가 올림픽으로 인해 기차역이 많이 개선되기 이전이라 겪을 수밖에 없던 일이다. 지금은 기차출발 10분전에야 택시를 타고 역에 가자고 하지도 않고 올림픽을 개기로 많이 역이 많이 개선됐으며 빠르면 30분, 느리면 두 시간은 걸리는 각종 기차도 많이 타봐 이제 중국기차는 필자에게 익숙한 중국의 한 문화라면 문화인 것이다. 경험 덕분에 필자는 웬만한 일은 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넘어선 깡을 소유하게 되었다.

 여행하는 것도 좋아하고 혼자 내버려둬도 온갖 공상으로 잘 지낼 수 있는 필자에게 비행기보다 훨씬 싼

 

기차는 좋은 여행도구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혼자 천진에서 기차를 타고 열 시간가량 가야 하던 상해(上海)까지 놀러 갔다 온 적도, 동생과 함께 북경 오기 이전 7여 년간 거주해왔던 내 두 번째 마음의 고향 광동성 광주(廣東省 廣州)에 27시간가량 걸려 기차를 타고 간 적도, 심지어 북경에서 러시아 이르쿠츠크까지 이틀 가량 국제열차를 타고 간 적도 있을 정도. ‘그냥 비행기타고 빨리 가지 왜 시간낭비를 하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을게 분명하지만, 필자는 기차 안에서 창 밖에 끝없이 펼쳐진 가슴 확 트이는 멋들어진 배경을 두 눈에 담는 낭만과 비행기에선 만나지 못할 각지의 중국인들과 섞는 대화나 나눠먹는 간식, 그리고 독서를 하고 일기나 산문 따위를 끄적거리며 내 세계 속의 여유로움 등이 못견디게 즐겁다고 답하고 싶다.

 

 중국에 왔다면 중국 기차를 타보자. 어쩌면 생각지도 못한 즐거움이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