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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NA/라이프

영화 <패왕별희>를 논하다

패왕별희의 포스터

-제목: 패왕별희(霸王别姬)
-점수: ★★★★★(별5개 만점 기준)
-감독: 천카이꺼(陈凯歌)
-주연: 장국영(张国荣) 장펑이(张丰毅) 공리(巩俐)

-리뷰:

중국에서 중고등학교를 모두 다닌 필자는 문학에 꽤나 심취되어있던 학생이었다. 창작문학에 정신 팔려 한국어나 중국어를 막론하고 주구장창 읽고 끄적거려보기도 했고, 시험기간임에도 불구하고 버스로 40분이나 걸리는 곳에 위치한 영화관에 가 영화 하나 보고 오기도 했고(이 습관은 아직도 남아, 필자는 기말고사 전 날임에도 보고 싶은 영화를 위해 영화관으로 발길을 돌리기도 한다), 역사관련 배경으로 만든 허구적 소설조차 내 마음에 들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역사를 파헤쳐보는 등 특별히 공부를 한다기 보단 내 취미에 빠져 살아오곤 했다. 그런 필자에게 영화 <패왕별희>는 정말 특별한 의미로써 다가온다고 할 수밖에 없겠다.

 이거 정말 명작이다. 정말 많고 많은 사람들이 극찬한 것이 이유가 다 있다. 필자는 고등학교 때, 중국친구랑 같이 보고 이 영화 가지고 일주일 동안이나 토론도 해봤고 심지어는 어문선생님하고도 깊은 담화를 나누기도 했을 정도니 이 영화의 문화적 가치가 얼마나 높은지는 말 할 필요도 없다. 이 글을 위해 다시 한번 감상을 한 이 영화는, 내 나이가 늘음에 따라 필자로 하여금 그 감명의 깊이를 더하게 만들었다. 본 글엔 영화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다량 함유되어있으니 감상 전의 사람들은 먼저 영화부터 보길 부탁하는 바이다.

 우선적으로, 경극 <패왕별희>에 대해 말하자면, 이 것은 <초한지>로 잘 알려져 있는 초나라와 한나라와의 전쟁이야기를 그린 것인데,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경극의 마지막 장면은 패왕 항우가 유방의 사면초가 전법으로 인해 궁지에 몰려있을 때 자신의 애첨 우희와의 마지막 대사와, 항우를 향한 절개를 지키기 위한 우희의 자결장면이다. 영화는 중국 격동기 시절 두 경극배우의 파란만장한 삶과, 그들의 감정, 그리고 중국의 특수한 당시 배경 속에서 존재하던 사람들의 인성적 변화 등을 노골적이고 핵심적으로 꿰뚫었었으며, 필자를 포함한 많은 관중들로 하여금 그 끝 모를 깊이에 진지한 사색을 하게끔 만들었다. 아무래도 이 영화는 중국 근현대사를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그를 어느 정도 이해해야만 더 재미있고 깊이 있게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패왕별희>는 1925년 군벌시대 중국을 배경으로, 유명한 북경 경극학교에 맡겨진 두 소년 데이(장국영)와 샬로(장펑이)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섬세하고 예쁘게 생긴 데이에게는 당연히 우희의 역할이 주어졌으며, 평생을 그렇게 여성역할로써의 삶을 강요 받은 그가 제 몸을 다 바친 극 속에 빠져 살며 패왕 역의 샬로를 사랑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운명이었음이 분명하다. 영화를 보면서 필자가 생각했던 것은 장국영 어린시절을 연기한 아역배우들이 정말 여자가 아닐까-했던 물음일 정도. 1937년 항일운동이 한참 거세던 시절, 두 주인공은 이미 가장 유명한 경극배우가 되어있었고, 홍등가의 유명한 창녀 주샨(공리)와 사랑에 빠진 샬로와 그로 인해 질투와 배신을 느끼는 데이가 부유한 후원자에게 의탁도 하고 아편에 손까지 대는 등, 이 세 사람의 감정노선은 주체할 수 없이 꼬이기만 한다. 경극을 사랑하지만 현실과는 명확한 차이를 두는 샬로에 비해,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성정체성조차 부정당하며 극에 빠져 살 수밖에 없던 데이이기에 그의 여린 마음과 그와 반비례하는 독기가 그렇게나 마음 아프고 불쌍할 수가 없었다. 이후 경극무대를 아수라장으로 만든 일본군들과 난투극을 벌이다 체포된 샬로를 구하기 위해 데이는 주저없이 일본군 장교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그로 인해 1945년 일본군이 물러간 이후 장개석 정부가 북경에 들어선 시기, 데이는 일본을 두둔한 민족배신자라는 죄목으로 체포됐다 국민당군 고급장교로 인해 면죄 받는다. 1949년 중국 공산당과 모택동이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선포 이후,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에 몰입한 중국 사회문화 전반엔 공산주의 혁명의 기조를 부르짖는 분위기가 무르익어 전통적인 경극은 큰 난관에 부닥치게 된다. 이후 1966년부터 시작한 문화대혁명 시기, 기존의 부르주아들과 놀아났다는 이유로 경극단원들은 홍위병들에게 강압적 심문을 당하고 공개 자아 비판을 강요 받고, 이로 인해 이성을 잃어버린 샬로와 데이가 서로의 과거를 폭로해버리고, 그 과정에서 상처를 받은 주샨은 자살로써 생을 마감한다. 이 부분은 영화의 거의 끝부분임과 동시에 내가 친구와 어문선생님과 가장 많이 나누었던 부분이기도 하다. 중국 역사를 어느정도 배운 사람이라면 다 알 수 있듯이 문화대혁명이 중국과 인민들에게 남긴 상처는 정말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크다. 모택동의 개인주의와 영웅심리, 그리고 독재적 성향으로 인해 가해진 소위 ‘대혁명’은 사회주의에서의 계급투쟁을 강조하자며 시작한 대중운동의 초기적 성질에서 완벽하게 변질되어 당 내에서는 권력투쟁을, 당 외 군중들 사이에선 중국을 경직되다 못해 인성의 왜곡까지 야기시켜버린 극좌적 오류를 범해버린 10년간의 암울한 흑빛의 역사이기도 하다. 샬로와 데이가 자가비판과 동시에 이성을 잃고 서로에게 독설을 내뿜던 것은 바로 그러한 역사를 직설적으로 찌른 것이 아닐까.

 영화의 마지막은 11년이 지난 1977년, 텅 빈 경극장에서 다시 만나 마지막 패왕별희 경극을 공연하는 샬로와 데이를 그리고, 역사 속, 그리고 경극 속 우희처럼 패왕의 칼로써 자신의 생을 마감하는 데이를 그림으로써 피날레를 그린다. 평생을 우희역할을 맡고 우희로써 살아가던 데이가 우희로써 죽는 것이다.

 경극 패왕별희 자체로도 격변했던 중국을 보여주는데다, 20세기 20년대 부패한 황실내부(영화에선 데이를 향해 남색을 즐기던 내관노인을 그림으로써 나타냈다), 30년대 중국의 문제였던 아편에 대한 노골적 묘사, 40년대 일본군이 물러가기 전 일부 인민들의 매국적 처사, 50년대 공산당의 위치확립과 더불어 경극에도 더해진 혁명 이데올로기를 통해 나타난 당시 사람들의 예술을 향한 모욕(내지 무지함까지), 6~70년대의 비극 문화대혁명까지…이 영화는 중국 근현대사의 격변기 속에서 예술과 인간, 그리고 더 나아가 사회를 그렸고, 중화인민공화국의 치부를 드러냈다는 이유로 중국에서 상영금지를 당했었단다. (문화대혁명 관련 영화 중엔 정부로 인해 금지된 것이 많지만, 꽤나 개방적인 현재는 다들 암암리에서 관람하기도 하고, 지난 학기 필자가 들었던,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은 수업의 교수님은 우리에게 추천까지 하시며 보라 하셨었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남은 이 영화야 말로 명작이다-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글_ 최예지나 
PKU Blogg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