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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NA/시사

사회주의 시장경제가 낳은 21세기의 농노

중국 사회의 빈민노동 계층, 농민공

중국 곳곳 분주한 공사판의 노역들, 길 가장자리서 손님을 기다리는 인력거꾼들, 저렴한 가격을 모든 가사를 도맡는 파출부들, 이들 모두가 급속한 중국의 사회 변화가 만들어 낸 새로운 사회계층이란 것을 아는가? 저 외진 산간벽지 어딘가에서 보따리 하나만을 들고 올라와 일자리를 찾아 헤매는 이들, 바로 중국 경제 성장의 일등공신 ‘농민공’이다.

농민공,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들은 농민이자 노동자(중국어로 노동자를 ‘공인(工人)’이라고 한다.)이다. 최근 중국의 도시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농촌에서 이주한 농민 출신의 노동자들인 것이다. 그런데 ‘농민’이란 ‘직업’의 개념이 어째서 꼬리표가 되는 것일까? 그것은 중국에서 농민이란 하나의 직업이 아닌 ‘농민호구를 가진 자’를 뜻하는 일종의 신분이기 때문이다.

1950년대 중기, 중국에선 모택동(毛泽东)의 지휘 아래에 대약진 운동이 벌어진다. ‘5년 내 영국 따라잡기’, ‘15년 내 미국 따라잡기’등의 터무니없는 목표를 잡아놓고, 노동력으로 기계를 대체, 혹독한 경제발전을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국민이 농업인구였던 만큼 개혁에 주로 이용된 이들 역시 농민들이었다. 인간 사슬을 이용한 관개수로 공사, 인력을 이용한 선박 끌기 등 가혹한 노동환경을 견디지 못한 많은 이들이 죽어나갔으며, 발전은 고사하고 엄청난 인력 손실과 생산력 감퇴가 이어졌다. 결과 농업인구의 감소로 인해 중국 전역은 기근에 시달리게 되었고, 많은 농민들은 고된 농업 보다는 상공업에 종사하길 원하며 도시로 발길을 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식량 확보가 급했던 중국 정부로서는 농민의 도시진출은 그리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그리하여 1958년 중국 정부는 호구등기조례를 실시, 모든 국민의 호적이 농민과 비농민으로 분류하였으며, 농민이 도시로 유입되는 것을 엄격히 제한하였다. 그리고 개혁개방 후, 이 호구정책은 일종의 굴레가 되어 이들을 구속하기에 이르른다. 농민은 함부로 도시로 이주해서 살 수도 없고, 대학 입학 시 커트라인도 다르며, 심지어는 사망배상금 등 법적 권리마저 차별 받는다. “시민은 시민을 낳고 농민은 농민을 낳는다.”라는 현대판 신분제 같은 말이 하나의 유행어처럼 등장한 것은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닌 것이다.

농민들이 보다 나은 돈벌이를 찾아서 도시로 떠나고, 또 그들 대부분의 도시의 빈민층으로 전락하는 것은 산업화를 거치는 어는 국가나 겪는 진통이다. 그러나 중국은 농민의 수가 월등히 많은 상태에서 ‘도농 이원화 호적 정책’을 시행했기에 그 과정이 특수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힘들어도 ‘더불어 사는 삶’을 꿈꿔왔던 중국 농민들에게 있어 이러한 농민공들의 존재는 빈부 격차가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여겨지고 있다는 증거이다. 중국 혁명의 주체였던 농민이 ‘사회주의 시장경제’라는 전환기를 거치며 불평등의 희생양으로 전락한 것이다.

글_ HoneyWind
(windmelody114@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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