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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KU/캠퍼스&라이프

제 5회 국제 문화제에 그 후기

 청운의 꿈과 젊음의 열정을 안고 북경대에 입학한지 한 달 남짓. 대학생활에 대한 두려움과 떨림도 조금씩 사라지고 중국어로 진행되는 수업도 점차 익숙해질 즈음 뭔가 색다른 것을 찾게 되었다.

물론 수업은 여전히 어려웠지만 그래도 긴긴 입시에서 벗어나 유학 왔는데 매일 책상에 앉아 책만 보긴 무료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학과 선배의 소개로 얼마 후 국제 문화제를 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국제문화제는 올해로 벌써 5회째로 북경대에 재학 중인 전 세계 67개국 유학생들이 주체가 되어 자국의 문화를 알리고 서로의 문화를 배우는 북경대의 성대한 축제이다.

 한국전통문화를 세계 곳곳에 알리겠다는 웅대한(?) 사명감을 갖고 문화제에 참여하기로 했다. 한국 유학생회에서는 조선시대 생활상을 연극으로 재현할 지원자를 모집하고 있었다. 대략 인원은 황진희, 엿장수, 주모, 신랑신부, 훈장님 정도가 있었다. 보자마자 신랑역에 지원하고 싶었지만 신랑신부 지원조건에 ‘될 수 있으면 커플이 지원했으면 좋겠다’는 문구를 보고 아직 독신인 관계로 아쉽지만 다른 역할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남은 역중에 훈장역 지원 조건이 인내심 많고 생김세가 나이보다 성숙해 보이는 얼굴이었기 때문에 바로 훈장역에 지원 했다. 다른 건 몰라도 중후한 얼굴에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세계 각지에서 온 친구들에게 한국을 알리고 또 많은 친구들을 사귈 생각을 하니 더욱 국제 문화제가 기대 되었다.

학생회의 통보를 기다리던 중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듣게 되었다. 같은 동아리 하는 선배도 문화제에 참가하셔서 정보 아시는데 훈장역엔 이미 다른 사람이 됐다는 것이다. ‘아~ 역시 난 안돼’하는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며칠을 우울하게 보내던 중 학생회에서 연락이 왔다. 훈장역은 이미 배정이 끝났고 혹시 신랑역을 해볼 의양이 있냐고 물어보는 것이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생각지도 못했던 신랑역을 맡게 되다니 꿈만 같았다. 곧바로 한다고 확답을 하고 신부는 누굴까 행복한 고민을 하며 문화제 리허설을 기다렸다.

10월 25일 토요일 밤. 축제의 장이 될 북경대 백주년 기념관 앞 광장은 이미 무대 설치와 각 부스의 리허설로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축제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한국 부스의 전통 혼례식



북경대 유학생중 한국인이 85%임을 반영하듯 한국부스는 다른 나라보다 두 세배는 크게 할당 받아 그 규모가 자못 당당했다. 학생회 분들과 문화제 참가하는 지원자들과 서로 인사하며 안면을 익히던 중 신부를 보고 깜짝 놀랐다. 바로 얼마 전 동아리에서 내게 학생회 소식을 알려준 선배였기 때문이다. 선배와 서로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어서 한참을 웃다가 이런 것이 바로 인연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다음날 아침 10시 최종 연습이 있다는 통보를 받고 학교로 향했다. 학교는 문화제를 구경하러 온 학생들과 구경꾼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전통혼례식 연극은 오후 두시에 시작되어 그때 까지 아직 시간이 많았지만 막상 전통 의상을 입고 많은 사라들 앞에서 연극을 할 생각을 하니 긴장되고 떨려서 문화제 구경도 잘 못하고 초조하게 기다렸다. 시간이 되고 연습대로 전통 혼례식을 진행했다. 혼례식장 주의를 빼곡히 둘러싼 구경꾼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혼례식을 치르니 공연장의 배우가 된 마냥 신기했다. 혼례식에 이어 폐백까지 성황리에 마친 후 포토타임을 가졌다. 공연 후 유학생회에서 폴라로이드 사진기를 준비해서 관객과 사진을 찍어 즉석에서 나누어 주는 이벤트를 했다. 효과는 기대 이상이어서 평생 찍을 사진을 하루 만에 다 찍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많은 사진을 찍었다.

황진이, 신랑, 신부, 주모 그리고 관람객들



 혼례복을 벗고 평범한 관객의 한 사람으로 돌아와 나도 문화제를 구경하기로 했다. 문화제를 구경하면서 받은 첫 번째 인상은 내가 중국 아니 세계의 중심에 와 있다는 느낌 이었다. 국기조차 생소한 중동이나 아프리카 나라들부터 친근한 유럽국가들 까지 정말 다양한 나라의 문화를 보고 배우면서 비록 언어, 피부색, 국적은 모두 제각각이지만 다 같은 북경대 학생으로서 축제의 즐거움을 다 같이 호흡했다. 그리고 자국의 전통의상을 곱게 차려입고 열심히 설명해 주는 친구들을 보며 북경대 학생들의 숨겨진 열정을 엿볼 수 도 있었다. 60여 개국의 수많은 부스들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나라는 바로 북한이었다. 난생처음 실제로 본 북한의 이미지는 너무나도 이국적이었다. 북한 부스 내부를 빼곡히 둘러싸고 있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진들과 정장차림의 북한학생들은 떠들썩한 축제 속에 고립돼있는 것처럼 고독해 보였다. 다양한 전통 볼거리가 있는 한국 부스와는 대조적으로 북한 부스는 정치적 이념만이 남아있는 현 상황을 반영하듯 현실과 붕 떠버린 느낌 이었다. 긴장된 북한학생들의 눈빛과 썰렁한 부스를 보며 언젠가는 그들도 환하게 웃으며 세계의 축제를 즐길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는 다짐을 하기도 하였다.

 해가 서쪽으로 뉘엿뉘엿 질 무렵 세계 각지에서 온 유학생들이 저마다 자국의 국기를 흔들며 축제의 마지막을 장식 했다. 그날 하늘은 청명하고 바람은 맑았다. 북경대에 막 입학한 새내기로서 이번 국제문화제를 통해 세계의 문화를 직접 피부로 느껴서 좋았고, 나 또한 다른 나라 친구들에게 한국의 아름다운 전통 문화를 알렸다는데 뜻 깊었다. 소중한 추억으로 남은 이번 국제문화제를 떠올리며 다음 문화제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글_ 공덕진
PKU Blogg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