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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KU/캠퍼스&라이프

북대, 교환학생의 생활기

나의 북대 생활기 -교환학생 생활 수기

대학에만 들어가면 모든 게 해결 될 것만 같았던 철없던 나의 인생은 이제서야 조금 성숙해 지려나 보다. 대학교 4학년. 초등학교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붙여주었던 학생의 명찰을 이제는 가슴에서 떼어내어야 한다. 난 이제 누구로 살아가는 걸까? “취업”이라는 막연했던 단어가 현실로 다가온 오늘, 정신 없이 허덕이는 일상에서 조금 벗어나 숨가쁘게 달려왔던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적어보는 짧은 이야기…

혜화역 4번출구. 베스킨라빈스 앞
나의 대학생활의 절반은 이곳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일주일 내내 계속되는 마케팅 과목의 조 모임부터 어색하고 두근거렸던 소개팅 장소까지… 낭만적인 추억도, 고생스러웠던 기억도 모두 그곳에 묻어있다. 이것이 고등학교 시절, 내가 꿈꿨던 캠퍼스의 낭만은 아니었을지라도, 나의 대학생활은 나름 즐거웠다고 자부한다. 시험기간이면 새벽 6시부터 시작되는 치열한 도서관 자리싸움, 대출(대리출석)의 스릴, 간간히 떠나는 엠티와, 동아리 활동, 굳이 콘서트에 가지 않아도 축제 때면 친절히 찾아와주는 가슴 설레는 연예인들, 수많은 레포트와 quiz들의 압박, 70,80년대에나 있을법한 도서관 쪽지연애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고, 학교 벽 여기저기 붙어있는 고시 합격 축하 플랜카드와 동문회, 향우회, 동아리 등의 술자리를 알리는 대자보들…
한국에서 대학생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학교 앞 단골 식당의 인심 좋은 주인 아주머니의 화통한 웃음같이 추억하면 기분 좋은 그런 것. 아직도 학점과 토익, 인턴과 자격증의 스트레스는 여전하지만, 또 다시 취업만 되면 모든 게 해결될 것 같은 단순한 기대는 하지 않으련다.

2007년 봄. 상해 복단 대학교
제대 직후, 글로벌 스쿨을 지향한 우리 학교는 해외 유명 대학과의 교류를 체결하고 있었다. 그래서 지원하게 된 교환학생. 상해 복단 대학교에서의 한 학기. 넓은 잔디밭에 옹기 종기 모여서 선선히 불어오는 바람을 벗삼아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 복단 대학교 학생들, 나는 그들의 여유로움이 부러웠다. 조급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한국 대학의 학생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바로 이렇게 생각을 정리할 여유가 아닐런지……
“你好,谢谢,对不起(당시 난 不好意思조차 모르는 상태였다)”이 세 문장으로 나의 전투중국어 생활은 시작되었다. 팝스 잉글리쉬의 오성식씨가 영어를 배우기 위해 경복궁에서 지나가는 외국인들을 잡고 무작정 말을 걸었듯이, 무식해서 용감했던 나에게 지나가는 복단대학교 학생들은 모두가 선생님이었다. 그들의 격려와 친절한 도움은 나에게 상해에 대한, 복단 대학교에 대한 좋은 기억을 남겨 주었다.
 
2008년 현재. 북경대학교
또 다시 찾아온 교환학생의 기회. 북경대학교에서의 1년이 시작되었다. 상해와는 사뭇 다른 이곳. 북경에 오기 전, 한 중국친구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북경대학교 학생들은 밥 먹으면서도 책을 보고, 조깅하면서도 책을 들고 뛴다고… 14억 인구, 중국에서 날고 긴다는 학생들이 모여있다는 이곳 북경대학교. 나는 걱정보다 새로운 도전의 기쁨에 즐거웠다. 한 학기가 마무리되는 지금, 비록 조깅하면서 책을 들고 뛰는 중국학생은 만나보지 못했지만, 그 이상의 것들을 느끼고 보았다. 커다란 호숫가에 물안개가 자욱한 어느 날의 운치. 담쟁이 넝쿨이 가득 덮은 고풍스러운 건물들, 자연스러운 토론식 수업, 손드는 것이 눈치 보이지 않는 발표 분위기, 끊임없이 이어지는 질문과 대답. 100%를 알려주지 않고 학생들이 자유롭게 사고할 수 있는 여백을 남겨주는 강의들… 틀린 대답이 없고 다른 대답만 있을 뿐이라는 교수님의 한마디가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먼지 날리는 도로를 자전거로 30분을 타고서야 도착하는 학교지만, 나는 매일 이곳에서의 수업이 기대된다. 한국에서는 느끼기 힘든 수업에 대한 기대가 이곳에서는 너무나 자연스럽다는 것이 한편으로 부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안타까웠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수많은 문제들, 무엇보다 인간관계.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는 진지하고 깊은 인간관계는 아닐지라도, 일상적인 이야기보다 조금은 더 속내를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중국친구를 만나지 못했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피상적인 인간관계에서의 회의. 그리고 외로움. 하지만, 남은 한 학기는 조금 더 나아 질 거라는 기대를 가져본다.

그리고 남은 나의 이야기
꿈이 있는 사람은 멋있다. 도전하는 사람은 아름답다. 나의 대학생활은 멋지고 아름다웠는가? 누군가 나에게 이렇게 물어본다면, 비록 분주하고 조급한 대학 4학년, 취업준비생의 축 쳐진 어깨는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또한 필기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고 눈과 귀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한마디라도 더 알아듣고 싶은 나의 발버둥이 조금은 측은할지라도, 이것들 모두가 꿈을 위한 도전이기에, 나의 대학생활은 진정 멋지고 아름다웠다고 말하고 싶다.

글_ 이재용
성균관대학교 교환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