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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NA/국제뉴스

외규장각 도서, 중국의 원명원: 빼앗겨 버린 역사의 보물들 - 한중 문화유산 시리즈(1)

요즘 외규장각 도서 반환운동이 한국 사회에 화제가 되고 있다. 프랑스 군이 병인양요때 약탈해 간 외규장각 도서란 조선왕조의궤를 말한다. 외규장각은 1782년 정조가 강화도에 설치한 규장각의 부속 도서관으로, 병인양요 이전에는 1007, 5067()이 소장돼 있었고, 병인양요 당시, 189 340여 책의 의궤가 프랑스군의 퇴각과 함께 약탈당했으며, 현재 파리국립도서관에는 297책의 의궤가 보관되어 있다. 그 중 대부분이 특별히 제작된 어람용 의궤로, 세상에 단 한 부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강화도에 위치한 외규장각


프랑스가 약탈해간 외규장각 도서는 지난 1975년 프랑스 국립도서관 촉탁 직원으로 일하던 병선 박사가 베르사이유 별관 파손 창고에서 처음 발견, 목록을 정리하여 세상에 그 존재가 알려졌고, 1992년 주불 한국대사관이 외규장각 도서반환을 프랑스 정부에 정식 요청하였다. 그리고 이어진 93년 한불 정상회담에서는,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이 경부고속철도부설권을 프랑스의 테제베(TGV)가 따 내기 위한 의도로 <휘경원원소도감의궤>을 가지고 와 외규장각 도서 반환의 의지가 있음을 밝혔다.

그러나 한국 측은 무조건적인 반환을 주장하는 한편, 프랑스 정부측은 외규장각 도서를 국내로 반환하는 대신에 국내에 소장 중인 비슷한 가치를 지닌 우리 문화재를 대신 프랑스에 내주는 등가교환을 내세워 협의를 했으나 약탈당한 문화재를 상호 대여 형식으로 돌려받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는 우리 문화계의 반대로 합의가 무산됐다.

프랑스 측에서 협상을 계속 지연시키며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는 반면, 국내에서는 국제 사법재판소를 통해서라도 무조건적인 반환을 진행 해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조선왕실의궤는 이미 수 차례 그 가치를 인정 받았다. 2007년의 제 8차 세계기록유산 자문회의에 상정된 의궤에 관해서 유네스코는 의궤는 “500년에 걸친 조선왕조의 왕실 의전의 기록으로 매우 독특한 문건이다. 이 문건에서는 왕실의 의례를 산문과 그림을 통해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것은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기록이며, 중요한 의례의 세부적인 사항들을 모두 기록한 것이다. 이 문건에서 보이는 독특한 기록 양식은 세계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라고 소개하였다
                                                                                                      2006년 한국에 전시 되었던 외규장각 도서

이번 외규장각 반환운동은 다음에 개설된 위대한 유산공식 카페의 게시판 지기로 활동 중인 한 고등학생 네티즌의 제기로 시작되었고, (http://cafe.daum.net/great74434) 지난 9월 세계 최초로 한국의 민간 단체 문화연대가 프랑스 정부를 상대로 외규장각 도서 반환 소송을 시작하였다.


    위대한 유산 카페에서는 외규장각 도서를 반드시 찾아야 할 우리의 유산입니다. 외규장각 도서는 대표적인 약탈문화재이기 때문입니다라고 소개하며 외규장각 반환에 대한 굳은 의지를 나타내었고, 또한 문화연대가 프랑스 정부에 제기한 이번 반환소송을 진행중인 김중호 변호사는 이번 사건이 정부를 상대로 하는 민간차원의 첫 소송인 만큼 어려움도 크지만 설혹 승소하지 못하더라도 유물반환과 관련한 단초를 제공했고, 이를 토대로 이집트, 터키 등 약탈문화재가 많은 나라와 국제적인 연대를 할 수 있는 디딤돌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이번 소송의 의의는 크다"면서 "어려운 사건임에는 분명하지만 승소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 이라고 이에 대한 각오를 밝혔다.
'다음 희망모금' 외규장각 반환소송 모금 캠페인

네티즌들도 응원메시지와 온라인 캠페인 모금 등의 방식으로 이번 반환소송에 동참하였다. “위대한 유산카페에는 이번 반환소송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사람들의 글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지난 10 20, 750여 명의 네티즌의 서명을 받아 반환소송을 후원하는 온라인 캠페인 모금이 시작되었다.

 

이처럼 우리문화유산 지키기 운동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그 동안 숭례문 사건 등 우리전통문화 유산관리에 허술함으로 질책을 받았던 한국 정부는 문화재청 ‘국가기록유산포털’을 새 단장함으로써 한국 정부도 적극적으로 문화재를 보전하고 알리려고 노력을 기울이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국가기록유산포털 공식 홈페이지에 프랑스 소장 외규장각 의궤코너 개설, ‘외규장각 의궤(儀軌) 유일본(30)과 관련 사진에 대한 상세한 소개 등 http://www.memorykorea.go.kr/)

외규장각 도서의 존재를 처음으로 세상에 알린 박병선 박사는 한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프랑스인들의 병인양요나 외규장각 도서반환 이유에 대한 인식에 대해, "도대체 그걸 왜 반환해야 하느냐고 묻는 프랑스인들이 많습니다. 이때마다 '만약 루이 14세의 왕실 행사를 자세히 기록한 유일한 문서본이 다른 나라에 있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고 되묻지요. 그럼 프랑스인들은 당연히 찾아와야 한다고 대답합니다."라고 이야기 하였다.

이번 반환운동을 통해,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 우리의 무관심과 방치 속에 빼앗기고도 되찾지 못하고 있는, 혹은 다시는 돌이킬 수 없이 사라져버린 문화재는 부지기수이다. 제일 최근 벌어진 비극으로써는 숭례문 방화사건을 예로 들 수 있다.

대한민국 국보 1호 숭례문(崇禮門) 조선시대 서울을 둘러쌌던 성곽의 정문으로 흔히 남대문(南大門)이라고 부른다. 1396(태조 5) 창건되었다.

서울 4대문 보신각(普信閣) 이름은 오행사상을 따라 지어졌는데, 이런 명칭은 (: ), (: ), (: ), (: ), (: 중앙) 5(五德) 표현한 것이었으며, 숭례문의 ""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2008 2 10 8 40 전후 방화범 채종기 방화 화재로 인해 목조 건물 일부와 석축 기반을 남기고 2 누각이 모두 소실되어, 기존의 원형 유지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이고, 국가의 중요한 물질 유산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현재 외부인의 접근을 통제하기 위해 숭례문 주위에 가림 막이 설치되었고, 기온이나 강수, 바람 등 기상요인에 의한 추가 붕괴 방지를 위하여 덮개를 씌운 상태이다. 문화재청에서는 소실된 숭례문의 원형 복구 계획을 발표하였고, 현재 복구 작업이 계속 진행 중이며, 2012년에 복구를 완성할 계획을 세웠다.

, 중국 역사에도 이와 비슷한 사례가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원명원(圓明園)’ 사건이다. 이 사건은 중국 근대사(중국 학술 계 기준) 역사 교육에서 가장 중요히 다뤄지는 내용 중의 하나이며, 서구에 대한 중국인의 혐오감을 심어주는 결정적인 역사 사건 중의 하나이다.

   원명원은 현재 중국 북경대학교의 북쪽 청화대학교의 서쪽에 위치해 있는 관광명소이다. 원명원은 본래 청나라 시대에 지어진 황실 어원(御苑)이자 휴식처였다. 하지만 1860년 영국 프랑스 연합군이 중국 대륙 침략 당시 북경 원명원에 난입하여 원명원을 불로 태워 파손시켰고, 1900년 소위 중국 역사에 유명한 팔국연군(八國聯軍, 즉 팔국 연합 군대, , , , 奧 등 서부 열강이 주를 이룸)이 재차 북경 원명원에 난입해 원명원의 문물을 약탈하고 원명원에 남아있던 13곳 황실 궁전을 파손시켜 폐허로 전락 시켰다
    

    당시 찬탈된 문물들은 현재 대영 박물관과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보존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러한 치욕적이고 뼈아픈 역사를 잊지 않고 항상 되새기자(勿忘国耻,나라의 수치를 잊지 말자)는 의미에서 중국 당국은 폐허로 전락한 원명원 당시의 원형을 복구하지 않고 지금까지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중국에 반환된 일부 원명원 띠동물 문물 (,원숭이 머리.,호랑이 머리, 백옥석으로 만들어짐)
CHRISTIE'S 경매사가 내년에 쥐 및 토끼 상() 경매 계획을 발표하여 큰 파장이 예상됨. 
    
    오늘날 북경에 가본 적이 있는 중국 사람들이면 누구나 한 번쯤은 원명원을 방문했다는 사실을 비추어 보았을 때, 원명원 사태는 중국인의 가슴속에 약국으로서 당시 서구열강의 만행을 무력하게 지켜보며 겪어야 했던 억울함 과 한() 이 얼마나 뿌리깊게 박혀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원명원의 모든 국보를 일체 정부의 거액 지불로 되돌려 받느냐 마느냐에 대한 찬반논란으로 문제 해결의 아무런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 정부는 끊임없이 국민들에게 원명원 사태에 대한 역사적 억울함과 한을 상기시키고 역사적 공감대를 유지 시키려 하고 있다. 이는 언젠가 가해국가로부터 국보들을 돌려받고 손해배상을 청구할 계획으로 풀이된다.

                                                                                                                                글_ 김소나, 조태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