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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KU/캠퍼스&라이프

스위트룸 전쟁사건

스위트룸 전쟁사건

북경대학교에 입문한지 이제 겨우 두달 남짓 하는 새내기 눈에는, 대학교라는 것 자체를 성스럽게 여기는 특유의 습성(?)상 모든것이 아름답고 멋져보입니다. 특히나 기숙사에 들어오기 위해 소비된 노력, 시간, 그리고 돈(매일 학교 오는데 드는 차비가 정말 갓 새내기 목숨을 조여오더군요…)의 결실을 드디어 손아귀에 얻은 날, 그러니까 자세히 말해, 이제부터 제 보금자리가 되어 줄 샤오웬 4동4층의 한 구석에 자리한 나만의 스위트룸에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입주를 하던 날, 너무 기뻐하던 제 뇌가 살짝 맛이 갔는지 꽤나 오랜 착시현상을 일으켜 이 녀석의 눈으로 하여금 그 방의 후광을 보게 해버려 저는 당연히, 정말 당연히 제 이 사랑스런 곳이 깨끗하다고 믿어버리는 순진함을 뽐내고 말았습니다. 그러니까 결론은, 처음 들어온 방을 청소조차 하지 않고 살기 시작했다-라는 말입죠.

같은 방을 쓰는 통우는 집이 가까워서 숙소보단 집을 더 자주 갔기에 거의 혼자 쓰는 방에 가까웠었고, 게다가 이제 막 학기 초였기에 여러 모임 참가에 학교 적응까지 하느라 눈코뜰새 없이 바빠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다가, 문득 제가 자주 놀러가는 아지트(같은 층의 친구 방)주인들이 청소를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후로 한달동안 저는 심각한 고민에 쌓이고 말았죠. 같은 시기에 숙소에 들어온 아지트 주인 둘은 벌써 닦고 쓸고 장판까지 깔았는데, 내 스위트룸 역시 때깔나게 만들어주어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만의 고유의(?) 자연미 유지를 위해 힘써야 하는가…하는 갈림길에 서서 말이지요.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날씨가 쌀쌀해짐에 따라 두꺼워지기 시작하는 옷들과, 시간이 지날수록 들어오는 바깥세상의 분자들(=먼지)의 환상스런 화합으로 야기 된 스위트룸 내 스모그현상에 조금씩 조금씩, 제 호흡기관이 고통과 분노를 호소하기 시작해 괴로워하던 어느 날 밤 11시 반 경, 저는 스위트룸 입주 한달 여만에 청소를 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집에 있을 때도 단 한번도 시도하지 않은 그 것을 말이죠. 한 시간이면 모든 것을 끝낼 수 있을거란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가지고, 신성한 의식을 하듯 경건한 마음으로, 막 학교 들어 올 당시 사두었던(그리고 한 달동안 먼지가 쌓여 섹시한 흑빛 피부를 자랑하는)솔과 가루비누를 꺼내, 아지트 주인들이 귀띔해 주었 듯 침대를 한쪽으로 밀어넣고 구석부터 닦기 시작했죠. 가루비누 뿌리고, 물 뿌리고, 솔로 문질러 거품내고…침대를 삐그덕 거리며 옮겨가며, 샤오웬 다른 입주자들의 청각에 무한한 자극을 제공하면서, 어쩌면 ‘이런 XX…’하는 정겨운 옆집 아저씨의 야성적인 언어가 나올만치의 소음을 계속 만들며 방바닥 전체에 비누칠을 한지 장장 30분. 생각보단 약간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됐지만 이 정도면 나름 무난하다는 생각으로 (수분 가득)촉촉한 걸레로 비누거품을 닦기 시작한 저는 그만, 이상 속의 세계와 현실 세계가 만들어낸 모순 앞에 무릎을 꿇고 망연자실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구석의 비누들이 굳어버린 거지…?
왜…(수분 가득)촉촉한 걸레가 춤을 출수록, 비누거품이 번지며 환호하는 거지…?
…그렇습니다. 저는 그저, 아직까진 제 생각의 세계 속에서 자유로이 헤엄치며, 즉, 간혹은 현실을 망각하며 모든 일을 이상화(理想化)시키는 어리고 순수한 07 어린이일 뿐이었던 것입니다! 손을 대면 댈수록 점점 활성화 되는 거품들의 농락으로 인해 전쟁터가 돼버린 바닥에 30분간 허리 굽혀 (수분 가득)촉촉한 걸레질을 하면서, 평생동안 가족을 위해 허리 굽혀 일하시는 우리네 어머님들이 생각나 눈물을 지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엄마 사랑해.). 물론 부지불식 간 입술 새로 흘러나오는 옆집 아저씨의 야성적인 언어를 배경음 삼아 말이죠. 근데 또 이 비누 거품들이 독하기도 한 게, 제가 이렇게까지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으면 좀 사그러져줘야지 제가 무슨 물 만난 물고기도 아니고 점점 활기찬 모습을 보여주니, 달구어진 팬 위에서 ‘내 몸이 타고있어’를 온 몸으로 표현해내면서 저 혼자 뒤집는 수고조차 하지 않아 정말 타버린 생선을 마주하고 있는 것 만치의 큰 분노가 느껴지더군요.

현재 상황은 四面楚歌. 제 기분은 束手無策. 그렇게 이미 밀리고 있는 전쟁터…정말 진지하게, 그냥 비누거품들을 아예 말려버리고 그냥 그 허연 ‘눈밭’ 위에서 생활을 할까라는 생각까지 했던 저는, 이 불리한 전쟁터에 지원군을 투입할 가치가 충분하다는 것을 느끼고 아지트 주인 한분께 전화를 했습니다.

“나 좀 살려줘…청소하려고 방 전체에 가루비누 뿌렸는데 닦아도 닦아도 닦이지 않아. 지우고 또 지워봐도 소용이 없는데…”
“…방 전체에?”
“속전속결의 꿈을 실현키 위해.”
“바닥 부분부분에 비누 조금 하고 닦고를 반복했어야지.”
“…아 그렇구나!”
“…휴.”

그런 방법은 생각치도 못했습니다. 정말 단순하게, 바닥에 한꺼번에 거품 내고 한번에 스윽 닦으면 ‘청소 끄읕—옥시크휑’의 효과를 볼 줄로만 알았던 저는 아직까지 세상에 눈을 못 뜬 07어린이니까요! 어찌됐건, 무언가 여운을 남기는 한숨을 내쉬고 지원군 신분으로 전쟁터로 전락된 제 스위트룸에 방문한 아지트주인의 도움으로, 그리고 처음엔 물기를 흡수하는 고상한 목적을 지닌채 저와 함께 스위트룸에 입주했다가 하룻밤만에 걸레로 타락해버린 3条의 수건의 희생으로, 도합 두 시간에 달하는 ‘전쟁’은 아군 승리로 막을 내렸습니다. 다음날 스위트룸을 잠시 들른 통우의 ‘언니 방바닥 색깔이 이런 줄은 몰랐어!’란 말이 얼마나 가슴에 와닿던지요. 하지만 이 전쟁을 일으킨 이가 바로 신성한 북경대 안 샤오웬 숙소를 과신했던 제 자신이니 누굴 원망할 수도 없네요.

그 후로 제 스위트룸은 나름 깔끔한 면모로 북경대 안 제 안식처 역활을 잘 해주고 있답니다.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교수님 수업들을 듣고 난생 처음으로 수 천 자에 달하는 레포트를 쓰며 제 손으로 머리를 쥐어 뜾는 바람에 야기 된 자가탈모 증상에 괴로운 나날들을 보내고 있기는 하지만, 어찌됐든 대학교에 들어온 후 맞는 일들은 정말 다 재미있는 추억거리가 될 것 같습니다. 앞으로 제 스위트룸에서 일어난 전쟁보다도 더 힘들거나 기막힌 일이 많이 생기긴 하겠지만 뭐, 혈기왕성하고 아직은 그저 사회로 나갈 준비단계에 속한 시간도 많은 대학생인데 무슨 일이던지 다 웃음으로 넘길 수 있지 않겠습니까?^^

07학번 국제관계학원
글_ 최예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