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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NA/기타

중국역사의 한 획을 긋는 분서갱유에 관해…

[서론]
 역사의 한 확을 긋는 분서갱유 사건. 너무나 유명해서 모르시는 분들이 없으실 듯 한데요. 간략히 우선, 소개를 하자면, 분서갱유라는 사건은 진시황 때에 일어난 문화탄압 운동이라고 보시면 될 듯 합니다. 우선 분서갱유, 이 사건은 위에서 말했다시피 큰일로 기록 되어있고, 가볍게 보고 넘어갈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요.

중국 역사를 배우면서, 제가 한번 분서갱유를 좋은 점(利点) 그리고 나쁜 점(不利点)으로 나누어서 오직 저만의 관점으로서 한번 살펴보았습니다.

[본론]
 일단, 좋지 안았던, 부정적인 면에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사람들이 이 진시황의 분서갱유하면은, 우민정책(愚民)의 일부분으로 생각하시고, 혹은 공포정치로서, 또 혹은 정치상의 반대세력을 제거하기 위한, 일종의 야만적인 사건이라 보시는 견해가 있으실 듯 합니다. 우리는 진 나라가, 정치상으로 법가의 노선을 채택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덕분에, 본래의 법가인 상앙 그리고 한비자등은 우민정책 그리고 법으로서 백성을 통제하고, 다스려야 한다,등등의 통일적으로 다스려야 한다, 또 이 일환으로 법가를 비판하는 사상 그리고 학설은 탄압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또 ‘선왕의도’를 말하는 유가를 비판한다, 이런 사상 탄압 하는 통치는 이후에도 변화는 없었다,물론 사상의 자유는 있을 수 가없었다. 표면상으로는, 함양궁에서 열린 연회에서, 어떤 유생이 진시황의 군현제를 반대하면서 과정에서 의견 충돌로 유생을 탄압하는 사건으로 보여집니다. 문화적으로, 전국시대의 각국의 역사책을 다 태워서, 공정한 역사적 평가는 이루어 질 수가 없게 되었다. 도덕적으로는, 야만적으로 유생들을 탄압한 덕분에, 유생들의 불만을 야기 시키고, 이것이 훗날 진나라 말기에 농민 반란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진시황의 분서갱유 사건은 동방문화에 크나큰 타격을 주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것은 또한, 국가의 권력을 이용하여서 사상의 자유와 학설을 탄압한 선례(先例)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외 훗날에 청나라의 반청 사상 탄압도 이와 비슷하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진시황으로 인해 동방문화의 융화는 힘든 일이 되고 말았는데요, 지금까지도 동방이 통합이 안되고, 모순으로 얽혀있는 하나의 이유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본 부정적인 면입니다.

 비록, 진시황의 분서갱유는 야만적이지만, 우리는 좋은 점을 짚지 않고 넘어갈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사건이 뭐 좋은 점이 있겠냐고 생각 하실 겁니다. 진시황의 분서갱유 사건은 한차례의 대표적인 정치적 반대세력을 탄압한 사건인데요, 이것을 통해 진시황은 인제 막 새롭게 탄생을 한 황제의 권위와 힘을 강화 시켰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또한, 진나라는 원래 법치국가인데요, 우민정책을 위해 분서갱유를 행한 것은 진나라의 법가통치를 유지하고, 이렇게 해서 반대의 정치세력들 그리고 백성들 통치를 쉽게 할 수 있도록 한 점, 또 사상을 한가지로 통합 시킨 것 등이 있습니다. 또, 분서갱유의 과장이라는 말도 있는데요. 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진시황은 불로장생의 약을 원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도사 및 방사들을 파견했는데, 이들이 모두 도망쳐서 460명의 유생을 본보기로 생매장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규모는 별로, 크지 않고 방사들을 죽이기 위해 과장 되었다는 말도 있답니다. 또한, 이 사건을 통해, 짧지만 유가세력을 약화시키고, 법가사상의 높은 위치를 확고히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분서갱유는 여러 사상들간의 투쟁이라고 볼 수가 있겠습니다. 이상으로, 좋은 점이었습니다.

[결말]
  지금까지도 진시황이 좋은 황제인지 나쁜 황제인지 말이 많습니다. 또 분서갱유 사건 또한 좋았는지, 나빴는지 말이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분서갱유라는 이 사건의 두 가지 얼굴을 모두 볼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제가 가볍게 이 사건이 어떻다 라고 정의를 내릴 수 는 없습니다. 또 제가 완전한 진시황을 평가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다각도에서 이것을 바라봐야 하고 , 아직까지도 이 사건은 현재 진행형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글_ 문성곤
00821606 역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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