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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NA/라이프

대만 오락프로그램, 康熙來了는?

대만 오락프로그램_1 얘는 대만 오락 프로그램을 봤을까?

중국 사람들이 촌스러운 사고방식과 말투를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시겠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가끔 어떤 북경대학의 중국 친구들과 얘기를 하다 보면 그 세련된 말솜씨에 놀라곤 합니다. 속으로 생각하죠, 얘는 어디서 온 거야?

중국 TV, 소위 말하는 주류 방송국에서 방영하는 프로그램 대부분은 어떤 특정한 말투와 제스처를 지향합니다. 예를 들면 시사프로그램에서는 말을 할 때 화면을 똑바로 응시하고 손을 직각으로 세우고 발음 성조에 따라서 얼굴과 손을 흔들면서 말을 합니다. (한국에서는 이런 모습이 매우 어색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 중국어의 정확한 성조와 발음을 구사해보면 얼굴을 성조에 맞추어서 흔드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습니다.) 그리고 요즘은 나아졌지만 중국의 아나운서들은 목소리가 비교적 굵고 지나치게 핵심단어를 강조하고 긴소리를 많이 냅니다. 이런 방송 프로그램을 열심히 보고 자란 중국 아이들은 그래서 그런지 어릴 때부터 낭송하듯이 사회를 보고 하다못해 교과서를 읽을 때에도 과도한 감정이입을 합니다. 제가 중국 고등학교 방송국에 있을 때 가장 유능한 MC로 평가 받았던 친구는 다름아닌 낭송동아리의 회장이었습니다. 사회를 보면서도 얼마나 목소리를 꼬아대던지…… 

하지만 지금 북경 대학에 와서 여러 행사에서 사회를 보면서 가장 많이 느끼는 것은 바로 중국 친구들의 언어구사(프로그램 진행)에 대한 기준의 변화입니다. 예전에는 목소리가 좋고 고사성어를 많이 쓰면 잘한다는 소리 들었지만 지금은 얼마나 자연스럽고 재치 있게 말을 하느냐가 중요한 기준입니다. 이런 급격한 변화를 체험하면서 제가 얻은 결론은 중국인의 중국내륙을 벗어난 방송매체 접촉이 중국인의 시야를 넓혔다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중국 정부가 정해준 “오락”의 틀 안에서 TV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소비했지만 지금은 인터넷을 통해서 세계 각국의 방송 프로그램을 접하게 되면서(1억을 육박하는 중국인들이 인터넷을 사용 중) 중국 사람들도 세계의 트렌드에 눈을 뜨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중국 젊은이들에게 영향을 끼친 방송 프로그램의 중심에 한국 오락프로그램(X맨으로 대표되는)과 대만 오락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대만 오락프로그램은 중국 내륙 프로그램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재미있습니다. 북경대학에서 중국 친구들에게 요즘 TV 뭐 보냐고 물어보면 대만 오락 프로그램을 줄줄이 얘기합니다. 대만 프로그램이라 해봐야 결국 보수적인 중국 프로그램 아니겠어……하실 수도 있겠지만 대만 프로그램은 대부분 한국 프로그램보다 더 선정적이고 자극적입니다. 간단한 예를 들자면 프로그램에서 게스트에게 첫 질문으로 “첫 경험은 언제인가요?”를 자연스럽게 던지는 식입니다. 그리고 프로그램에서 유난히 노출을 의도적으로 설정하고(얼마나 수영복을 자주 입고들 나오는지......) 징그럽고 더러운 소재를 많이 사용합니다. 실제로 메이저 방송국에서 방영한 프로그램 중에 출연자가 동물 대변을 먹고 곤충을 삼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프로그램을 제작한 PD는 지금 뜨고 있는 사회자로 활동하면서 자신이 제작한 자학 방송을 개그 소재로 삼고 있습니다. 이런 프로그램들이 인터넷을 통해 중국 내륙에 전해졌을 때 보수적인 TV프로그램만 보고 자란 중국 내륙의 젊은 층은 의외로 이런 과감하게 받아드렸고 대만 영화와 함께 중국 청년 사이에 확산되어 새로운 문화로 자리잡았습니다. 이런 오락 프로그램을 자주 접한 친구들과 그렇지 않은 친구들은 극명한 사고와 말투의 차이가 있습니다. 한 쪽은 교수가 잔소리하면 “교수변태”를 연발한다면 한 쪽은 열심히 교수 말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TV프로그램 하나로 세상이 갈릴 수도 있다는 것을 그 때 처음 느꼈습니다.. 그래서 저는 처음 보는 중국 사람을 대할 때마다 고민합니다. 얘는 대만 오락프로그램을 봤을까?

대만 오락프로그램_2 대만 오락 프로그램의 대표주자—“강희가왔다” 

중국 친구들이 열심히 보는 프로그램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대만 프로그램 중에서 10년 동안 명맥을 잇고 있는 “你猜我猜猜猜猜”(다같이 맞춰보자),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康熙来了”(강희가 왔다) 남자 아이돌이 대거 출연하는 이상한 토크쇼“模范棒棒糖”(모범츄파춥스(?)), 물론 귀여운 척 하는 여자아이들이 잔뜩 출연해서 이상한 애교 떠는 프로그램도 있습니다. 그 외에도“王牌大贱碟”(최고의찌질한스파이)“女人我最大”(여자가 최고다) 등등 토크쇼부터 리 얼 버라이어티, 퀴즈 쇼까지 다양합니다. 하지만 역시 대세는 토크쇼입니다. 

이런 프로그램 중에서 중국 젊은 층들이 가장 좋아하는 프로그램은 역시 康熙来了(강희가 왔다)입니다. 남녀 두 명의 사회자(남자 사회자는 게이고 여자 사회자는 임신부터 해서 결혼했습니다)가 진행하는 토크쇼인데 이 프로그램의 진정한 묘미는 두 명의 사회자의 재치 넘치는 진행입니다. 

이 프로그램이 방영된 초창기에는 여자 스타들을 모셔놓고 화장 지우기 놀이를 했습니다. 프로그램 진행은 간단합니다. 여자 스타 4명~5명을 게스트로 불러 놓고 한 명 한 명씩 무대 뒤로 가서 카메라의 감시 앞에서 화장을 지우는 거죠. 그리고 무대 앞에 나와서 쌩얼을 공개하는 겁니다. 쌩얼을 공개할 때 MC는 스스럼없이 괴물이다, 변장술이 대단하다, 어떻게 연예인을 했냐며 사정없이 스타에게 면박을 줍니다. (이런 비난이 가능한 이유는 두 명의 사회자가 대만 방송에서 가지고 있는 엄청난 스타성과 10년을 넘어가는 방송경력입니다. 특히 여자 MC의 경우 미모와 능력을 겸비하고 있어서 스타 중에 스타입니다.) 대놓고 어디가 이상하고 어디를 성형했는지 까발립니다. 그 때 일련의 여자 스타들의 추한 쌩얼들이 공개되면서 사회적인 이슈로 떠올랐고 급기야 몇몇 스타들은 사람들의 비난을 이기지 못해 일을 쉬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강희가 왔다”—뭐든지 말한다.

아까도 말했지만 강희가 왔다가 뜨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사회자의 특별한 스타성에 있습니다. 이미 스타 중에서도 A+급인 두 명의 MC가 진행하기 때문에 게스트에 대한 배려나 칭찬은 찾아볼 수 가 없습니다. 강희가 왔다 를 보다가 라디오 스타,절친노트의 김구라를 보면 저건 약과야. 라는 말이 나올 정도니까요. 한 번은 강희가 왔다 에서 유명한 남자 연예인이 왔는데 얼마 전 TV프로그램 성기노출 사건에 휘말렸던 일을 대놓고 얘기해서 남자 연예인이 표정관리가 안 되더군요. 그리고 원로 급 가수에게 요즘 일이 없어서 협찬이 안 들어 오나 봐요 라며 옷에 튀어나온 실밥을 뜯어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가장 많이 하는 직설적인 얘기는 상대방이 말할 때 그 말의 의도를 캐내는 식입니다. 국회의원 아버지를 둔 여자 연예인이 출연해서 다른 사람 차에 타게 된 실수 담을 얘기하면서 당시 봉투에 몇 천만 원이 들어있었다는 얘기를 지나치듯이 했는데 MC들이 바로 돈 많은 거 자랑하지 말라고 당신 아버지 국회의원인 거 다 안다고 프로그램 내내 면박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연예인들의 세계에 대해서도 적나라하게 까발립니다. 간단한 예로 연예인들을 대놓고 A급에서 F급까지 분류하고(굉장히 현실적으로 분류합니다), 연예인들의 수입을 공개하고 심지어 방송 뒷담화까지 프로그램 속에 끌어 들입니다. 얼핏 느끼기에는 지나친 자기들 이야기가 아닌가 싶지만 듣다 보면은 그들의 일상 직업세계를 끌어들이면서 오히려 진솔할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기도 합니다. 가장 많이 나오는 얘기 중 하나가 데뷔 초기의 안 좋은 과거에 대한 회상과 이성 관계, 프로그램 출연 중 고통스러웠던 경험과 인간관계에 대한 내용인데 한국처럼 포장되지 않은 적나라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듣다 보면 굉장히 쇼킹합니다. 특별히 그 중에 19금 이야기가 많이 있는데 성관계 간접 묘사가 대표적입니다. 안 잘리는 게 신기할 정도입니다.

“강희가 왔다”—새로운 정신세계: 무리두(无厘头)정신

강희가 왔다 등의 대만 프로그램이 중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가장 크게 중국 내륙 젊은 층에게 정신적인 변화를 가져온 것이 있다면 바로 무리두(无厘头)정신입니다. 무리두 정신은 일종의 의미와 논리를 신경 쓰지 않는 막무가내 정신입니다. 다시 말해서 말을 할 때에 말의 의미와 앞뒤 논리 자체를 무시하고 내키는 대로 말하고 생각하는 식이죠. 가장 자유분방하고 젊은 사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강희가 왔다는 확실히 무리두 냄새를 풍기고 있습니다. 오늘프로그램 주제가 무엇이든지 내키는 대로 내뱉습니다. 예를 들어서 2007년에 방영된 “뚱뚱하지만 괜찮아” “가슴이 작은 것의 미학”두 편에서 프로그램의 의도 자체는 뚱뚱해도 가슴이 작아도 잘 살 수 있다 였지만 실제로 방영된 내용은 심각한 헐뜯기였습니다. MC는 대본대로 그래도 괜찮아 하다가도 갑자기 아닌 것 같은데 하면서 무대 중간에 나가서 볼륨 있는 자기 몸을 자랑합니다. 프로그램이 가지고 있는 목적과 진행의 흐름을 무시하는 게 어떻게 보면 강희가 왔다의 특징입니다. 프로그램을 진행하다가도 MC가 오늘 프로그램은 망쳤으니까 다들 노출이나 좀 하세요. 등의 심각한 농담을 하기도 합니다. MC가 워낙 재치가 넘치기 때문에 이런 돌발적인 행동들이 매우 재미있게 포장되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사실은 지나친 자유분방함과 의미를 벗어난 무리두 사고방식이 묻어나 있습니다. 

그래서 결론은 “강희가 왔다”는 저질 프로그램입니다.가 되어야 맞을 것 같지만 사실 저는 이 프로그램에 대해서 재미있다는 평가부터 내리고 싶습니다.(인정하기 싫지만) 그리고 중국 내륙의 학생들이 이 방송을 보면서 느낄 충격에 대해서 논하기 전에 정형화된 생각과 말의 방식을 깨뜨렸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고 싶습니다.

2008년 상반기에 북경대학에 “강희가 왔다”의 여자 MC(小S)가 강연회를 왔는데 북경대학 학생들은 그녀에게 열렬한 환호를 보냈습니다. 물론 언론 매체들은 어떻게 이런 이상한 프로그램의 MC가 중국 최고의 대학에 와서 강연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던졌지만 저희 학교 교장선생님께서는 북경대는 뭐든지 포용하니까 라며 논쟁을 종식시켰습니다. 북경대학도 이상한 곳입니다.

글_ 이벌찬
PKU 고정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