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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NA/기타

전진: 한 민족의 영원한 자세 -루쉰의 『과객』을 다시 읽고

전진: 한 민족의 영원한 자세  -  루쉰의 『과객』을 다시 읽고

굽은 길을 따라 황혼의 적막 속에서 홀로 걸어간다. 천 년의 고통이 맺힌 눈빛이 전방을 향한다. 생명에 아직 남아있는 나머지 힘을 모두 모아, 머나먼 미지의 운명을 향한다.

이것이 바로 과객이다. 역사와 미래 사이를 분주히 오가는 과객. 전통의 구속과 세속의 굴레로부터 힘겹게 벗어난 후, 미친 듯 고집스러운 태도로 먼 미래를 향하는 과객. 평범하고 둔하며 의기소침했던 과거에 역사를 놓쳐버린 민족에게는, 비틀거리며 과거와 미래를 엮는 과객이 필요하다.


진부함을 그대로 답습하지 않는다. 그것을 아까워하지도 않는다. 그저 그에겐 맨 발과 지팡이만이 있을 뿐이다. 그의 옷이 부서졌고, 강산도 부서졌다……. 아득한 이 세상은 죽은 것 같기도 하고 산 것 같기도 하고, 길이 있는 것 같기도 하면서 없어 보인다. 앞을 향하는 과객만이 앳되고 조용한 소리로 황혼으로 덮인 세상에 활기를 더해준다. 요원한 앞날을 통찰해서 무엇 하리. 이미 정해진 틀을 좇아 무엇 하리. 길이란, 끈질긴 전진을 의미한다. 전진이란, 흥건한 피가 흩어진 가시덤불이다.

오! 역사의 깊은 곳으로부터 황망히 온 과객. 당신은 삶의 고난이며 도의 제전이다. 당신은 희망의 소리를 듣는 마음을 가질 것이다. 결연하게 전진할 용맹스러운 자세를 가질 것이다--비록 그 먼 곳이 벼랑의 석양이나 달빛이 감싸는 무덤일지라도. 그러므로, 당신은 거친 목소리로 외치라. “과거. 구축(驅逐)과 속박, 가식적인 웃음, 흘러내리는 눈물, 그 뿐이다. 난 그들을 증오한다. 난 돌아가지 않는다!”

어쩌면 당신은 그 밤을 벗어나기도 전에 이미 조용히 무덤 속에 누워있을 지도 모른다. 어쩌면 당신은 초원 위에 피어난 옅은 향기를 맡기도 전에 앞서 넘어진 이의 이정표가 어둠 속에 사라진 것처럼 보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신의 몸은 이미 “가장 익숙한 곳”—그 “가식적인 웃음”과 “흘러내리는 눈물”이 가득한 그 곳을 벗어나 다른 곳을 향해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당신은 당신의 시체로 백합과 들장미를 적셔 창망한 우주에 아름다운 빛을 더할 것이다. 그렇지만, 당신의 죽지 않는 영혼은 진취자의 “목소리”에 화답하고, 그와 함께 신비롭고, 심오하고 굴하지 않는 공명을 만들 것이다.


세기의 시작을 되돌아 보며 역사의 메아리를 듣는다.

“역사를 펼쳐보니, 모두 “사람을 먹는다”는 말 뿐이다. 이것은 한 시대의 광인들의 큰 고함이다.”—이는 미친 자들의 격정과 이성이 튀기는 도전이다.

“그러나 난 그럴 수 없다. 난 가야만 한다.”—이는 한 시대의 과객이 방황과 고심 끝에 내린 역사적 선택이다.

그것들은 죽은 수면 위에 솟아나는 세찬 물결이고 어두운 밤에 울리는 천둥이다. 광인, 미친 자, 과객……. 모두 모여 구세기의 반역과 반항의 교향곡을 이룬다.

민중과 혼돈을 깨우고, 전제와 박해를 깨트리자--이것이 바로 사상가와 혁명가로서의 루쉰이다. 이것이 바로 역사를 투시하는 “민-족-혼”이다.


구세기는 흘러가는 물처럼 흘러갔다. 신세기로 통하는 길은, 이미 중화 건아가 늠름하게 행진하는 모습들로 가득 차있다. 이 동방민족의 용맹스러운 자세는 세상을 감동시킬 것이다.

역사의 깊은 곳으로 사라져가는 과객, 그는 문학사 상의 개성 있는 인물상일 뿐 아니라, 민족정신발전사 상의 의미심장한 그림자이다.

우리는 이미 동방에 새로이 떠오르는 태양이다. 앞으로 세계 현대화 시류에 발맞추어, 더욱 넓은 시야와 굳은 의지로 난관을 헤쳐가야 한다.

전진, 중화 민족의 영원한 자세임에 틀림없다.

출처: 중국청년보, 칼럼.

번역_ 김새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