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HINA/이슈

북대에 세워진 엽기 조각상, 이에 대한 생각과 네티즌 반응

예술의 심오함이란 -나체의 몽골인과 혀를 내밀고 있는 노자의 조각상을 보고

최근 북경대학교에서는 무엇이 이슈가 되고 있는가?
교장선생님이 바뀌었다는 거? 물론 그것도 큰 이슈이긴 하다. 그러나 나는 무엇보다도 광화관리학원 건물 앞에 세워져 있는 두 조각상이야 말로 최근 북경대의 큰 화제거리라고 생각한다. 처음 나의 중국동학(?)들로부터 두 조각상에 대한 말을 들었을 때부터 무언가 심상치 않은 기분이 들었다. 나체로 서있는 몽골남자, 그 앞에 있는 혀를 내밀고 있는 도가(道家)의 노자(老子)라,,, 직접 한번 보고 싶다는 내 호기심을 불러 일으켜 어느 날씨 좋은 날 그 문제에 장소로 가보았다.

[←뒷태부터 뭔가 심상치 않은 기분;;]

그랬다. 말 그대로 나체로 서있는 몽골 남자와 그 앞에 혀를 내밀고 있는 노자. 그래, 그때의 기분으로 돌아가서 다시 묘사 하자면 위풍당당하게 나체로 서있는 남정네와 제일 먼저 내 눈을 사로잡던 남정네의 그 것, 민망 하다시피 익살 맞은 표정을 한 노자 선생. 도가의 창시자 노자께서 왜 혀를 그렇게 내밀고 계신지...... 그리고 대립하여 서있는 두 조각상 사이에서의 어색함,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묘한 느낌.

나중에 알고 보니 중국 북경 신문 신경보(新京報)에 기사가 실렸을 만큼 대단한 이슈였고 중국 뉴스에서도 보도했었으며 이미 수많은 네티즌들 사이에서도 화제가 되었다.

신경보 신문에 의하면 이 두 조각상은 북경 중앙미술학원 조각과 교수 선홍뺘오(申紅飇)가 2008년에 창작한 “몽골한-전”(《蒙古漢———站》)과 2003년에 창작한 톈스신(田世新) 교수의 “강유지도 노자상”(《剛柔之道———老子像》)이다. 이 건장한 몽골 호걸은 힘의 상징을 나타내며 더 나아가 지식은 곧 힘이다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라 선(申)교수는 말하였다. 생식기를 내보이는 건 예술일 뿐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했다. 노자상은 본래 노자가 공자한테 굳셈과 부드러움의 도란 무엇인가를 배우는 모습을 표현하고자 만들었다고 톈(田)교수는 말했다. 노자가 혀를 내밀고 치아를 들어낸 것은 혀와 치아로 굳셈과 부드러움을 나타내기 위한 거였다고 한다.

 


 
















[↑혀를 내밀고 이를 드러내고 있는 노자 상]


[↑몽골인 (자체 모자이크;;)]

“천 쪼가리 하나 걸치지 않고 엉덩이를 다 들어내놓고 있으니 정말 구역질이 난다”라며 매일 아침 그곳을 지나야만 하는 翟老師 호소하였다. 익살맞은 표정을 하고 있는 노자가 더 이해할 수 없다고 덧붙혔다. 광화관리 학생들도 학교 분위기 맞지 않다며 최소한 이 조각상을 만든 저의가 뭔지는 써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네티즌들도 이 두 조각상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다. 그들의 의견을 정리 하자면 크게 두 가지 쟁점이 나온다. 

쟁점 1. 그저 예술 일 뿐이다.
이 두 조각상 특히 몽골인 조각상에 대해 예술이란 방탕함의 대명사라며 극단적이고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는 네티즌들이 있는 반면에 민감하게 반응 할 필요가 뭐가 있느냐, 이건 예술일 뿐이다라고 생각하는 네티즌들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예술이라고 해도 학교 분위기의 어울리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몽골인 만든 선(申)교수는 “전문가들은 이것이 예술이라는 것을 안다” 라고 말한 것에 대해 어떤 네티즌은 “나체는 원래 자체가 자연적인 것이다! 단지 통치자에게는 예술의 해독능력이 있어 통치자는 이 작품을 예술이라 하고 음미하며 즐길 동안 백성들은 색정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裸体本是自然界的自然事!但是统治者却解读为,当统治者欣赏时为艺术,当老百姓欣赏时则为色情.”)라며 예술가들이 말하는 예술을 그들은 예술을 모르기 때문에 예술을 예술로 보지 못하고 안 좋게 생각할 수 밖에 없다는 뜻을 밝혔다.

쟁점 2. 나체 조각상은 노자에 대한 치욕이다.
“老子是中国道教文化的鼻祖艺术,从某种意义上也我们传统道德观念的化身,而在我们的传统文化中“衣不遮体”更被当成一种耻辱,你让一位壮汉赤身裸体面对老子,生殖器挺得高高,这样的艺术“艺术”的让我们老子老脸往哪放?”
(”노자는 중국 도교문화의 선조시다. 어떻게 말하면 우리나라 전통 도덕관념의 화신이시다. 헌데 우리전통문화는 ‘의부차체’를 일종의 치욕이라고 생각하는데 나체의 건장한 호걸을 노자 앞에 세워 놓다니, 너희들이 말하는 예술 때문에 우리 노자선생보고 얼굴을 어디다 놓으라고 말하냔 말이다”) 어느 한 네티즌의 말이다.

노자상과 나체상을 연관 지을 때 대부분 네티즌들의 반응은 이러했다. 극단적으로 생각하는 한 네티즌은 당장 가서 저 생식기를 잘라 버려야 속이 시원하다면서 분노를 했다. 그 반면에 이 두 조각상의 배치에 의미를 부여하는 건 너무 과장된 생각이라며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비평했다.

[→서로 마주 보고 서있는 두 조각상]

어떻게 보면 그냥 웃고 넘어 갈 수 있는 일을 사람들이 너무 진지하게 생각을 하는 거에 너무 웃음이 나온다. (하지만 나도 어느새 이 글을 쓰면서 같이 진지해지는 내 자신을 발견 했을 때의 당혹감이란.)

예술이란 건 참 심오하다.
천 쪼가리 하나 걸치지 않은 몽골 남정네와 혀를 내밀고 익살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는 노자상, 이것이 그들이 말하는 소위 예술이다, 아니, 예술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의 예술작품은 아직 많은 사람들에게 받아드려 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나체의 모습을 보고 자연미가 아닌 성이 떠오를 수 밖에 없는 그래서 수치스럽고 노자에 대한 치욕이라고 생각하는 이 중국의 현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 전통사상에 물들어 버린 중국인들에겐 성은 그저 말하기 꺼려하고 추하고 더러운 것일 뿐이라고 생각할 수 도 있다. 하지만 도덕의 관점으로 예술을 평정하거나 판단한다면 아마 예술이 설 자리는 남아 있지 않게 되어 버릴 것이다.

예술은 예술로 평가해야 한다.
이러한 고립된 개념을 사회에서까지 고립되어 버리면 예술이 설 자리는 없을 것이다. 물론 아직까지 예술은 우리에게서 고립되어 있는 느낌을 준다. 그래서 이 두 조각상을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현상이 생기는 것이다. 아직까지 받아 드려지지 않는 현실에서 굳이 저런 조각상을 세워 놓을 필요가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없지 않아 있지만 예술을 이해하고 예술을 향해 손을 뻗어야 해야 하지 않을까.
예술은 예술이지 방탕의 대명사는 아니지 않기에.

글_ 박미나
PKU 고정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