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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KU/칼럼

중국, 표현의 자유는 어디에?

중국과 표현의 자유

# 1
1년여쯤 전에 북경대학교 한국어교육중심 홈페이지를 만든 적이 있었다. 지금은 계정이 만료되어 없어졌지만, 당시에는 나름 대단한 프로젝트였다. 북대 중한교류협회에서 도메인도 제공하고, 국관 교수님의 개인서버도 나누어주는 등 큰 도움을 주셨다. 이런 도움에 고무되어 이런저런 시도를 해 보던 중 하루는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자유게시판을 만들기 위해 PHP프로그램 설치권한을 달라고 했더니, 중국친구가 나에게 말했다.

“자유게시판을 사용하면 안 돼요”

동아리 홈페이지에 자유게시판이 없으면, 그야말로 동아리 홍보물을 스캔해서 인터넷에 올려놓은 것일 뿐이지 않는가… 갑자기 홈페이지 존재의 이유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말을 듣고 무슨 뜻인지 몰라 좀 더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북경대의 동아리나 관련단체는 인터넷에서 자유롭게 의견을 교류하는 공간을 임의로 만들어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또한, 만약 홈페이지를 제작하는 과정 중, 북경대의 서버를 사용한다면 자유게시판을 설치하는 것은 교칙으로 금지한다”


‘아니 홈페이지 만든다고 이것저것 지원해 줄 때는 언제고 이제와서 자유로운 의견교류는 금지한다니… 그럼 중국동아리는 자유게시판 없는 홈페이지를 쓰나? 중국학생들은 어디서 어떻게 인터넷에서 의사소통을 하느냐고 물어보았더니, 북대 학생들은 어떤 동아리 활동을 하건, 모두 일률적으로 北大未名BBS에서만 게시판을 만들고 말한다고 한다. 한국에는 그 흔한 다음까페가 이곳에는 없다는 말씀?

“학교에서는 모니터요원이 없어 관리감독이 되지 않는 사적인 게시판을 단체에서 사용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아요. 하지만 北大未名BBS에는 전문적인 모니터요원들이 24시간 관리감독을 하고 있기 때문에 괜찮아요”


“모니터요원들이라면 디씨에서 유행하던 그… 게시판알바?”

물론 한국과 중국, 전세계를 막론하고 어떤 홈페이지의 어느 게시판이든 관리자가 있고 어느정도 게시물의 내용에도 관여하는 관리역할을 한다. 그러나 내가 지금까지 받아온 교육의 잣대로 본다면 이는 게시판 관리가 아니라,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제약하는 수준이다. 의견교류의 장소까지 지정받아야 하는 것인가? 이는 마치 촛불시위가 유행하자, 경찰청에서 시위장소를 지정해주는 해프닝과 같은 일이 아닌가… (마치 위해주는 듯, 시위자들의 편의를 위한 간이화장실 제공이 압권이었던…)

뿐만 아니라, 중국친구가 이런 말을 너무나도 당연스럽게 말한다는 사실에 꽤 당황했다. 관리과 감시를 과연 어떤 기준으로 구분하는 걸까? 나와 다른 사람들이 다른 장소에서도 자유롭게 말할 권리를 왜 제약받는가? 자신의 의견이 누군가에게 관리받는다는 사실이 불쾌하지는 않나? 물론 기준은 애매하겠지만, 중국학생들은 과연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 2
얼마 전 친구들을 통해서 조금이나마 그에 대한 내용을 듣게 되었다. “언론의 자유” 토론시간에 한국학생들과 중국학생들이 한 조가 되어 토론수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한국학생들은 다른 선진국들과 비교하여 중국은 언론의 자유가 거의 없다고 생각하면서 중국학생들을 배려하느라 나름 조심스럽게 말을 하려는 찰나, 중국학생들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중국에도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결국 다른조와의 토론은 준비도 못한 채, 그 조 안에서 한국학생들과 중국학생들이 열띤(?) 토론을 벌였다고 한다.

정말로 중국은 언론의 자유가 있을까?
올림픽지원단 활동을 하면서 알게 된 신문사 기자분께서 말씀하시길, “중국에서 기사를 쓰면 매일 아침 제일 먼저 금지기사목록이라는 문서가 배달된다. 이 내용들은 기사화해서는 안 되는 것들이다” .

물론 한국도 과거 독재시절 때는 똑같이 이랬다고는 하지만, 인터넷이 고도로 발달한 21세기에도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역시 중국이야, 놀라워했던 기억이 난다. 금지기사목록이 있는데 어떻게 언론의 자유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는 말인가…

한국학생들과 중국학생들이 벌인 열띤 토론 중 중국측 입장은 이랬다.

“사람들의 도덕기준, 가치기준은 주관적이다. 그런데, 중국에는 사람이 너무 많다. 인구수만큼 다양하고 다른 도덕,가치기준이 있다. 이들의 생각, 이들의 기준들이 서로 충돌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그러나 중국이라는 나라의 국민의 한 사람으로써, 북경대 학생의 한사람으로써 우리는 나 말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며 다함께 살아야 한다. 우리는 일정한 틀 안에서 의견교류를 하는 것은 이를 위한 하나의 방법이다. 그리고 이건 언론자유와는 다른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만약 이 때문에 표현의 자유가 일부 제한된다고 해도 이는 공동체 질서를 위한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역시 북경대 아해들은 말을 잘해, 끄덕끄덕, 결과는 못들었지만, 왠지 토론은 중국학생들의 승리였을 듯하다. 물론 이 절대적 선의 가치에 틀린 말은 없다. 그러나 부족한 부분은 있다. 공동체 질서를 위한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소수 의견”이 아니라 “틀린 의견”이어야 한다는 점이 빠졌다. 한국과 중국을 막론하고 우리는 늘상 이 부분에서 실수를 한다. 잘못되고 부당한 의견은 응당 공동체의 질서 유지를 위해 삭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종종 이 기준은 고의든 그렇지 않든 모호하게 되고, 때로는 관리감독자의 권력에 의해 좌지우지 되곤 한다.

다행히 지성의 요람 북경대의 BBS에는 관리기준을 합당하게 지키고 있는 것 같다. 비록 얼마 되진 않지만 나를 비롯한 유학생들이 쓴 살짝 민감한 글들 다 온전히 잘 살아있다. 또한 올림픽개막식을 미리 방송하여 반한감정을 구체적으로 달아오르게 만든 SBS 덕분에 (남나라 잔치에 재뿌린 PD와 SBS사장은 정말 중국교민들에게 석고대죄 해야한다, 다음날 모든 중국신문 1면 머릿기사에 전부 한국 SBS 개막식 만행이라고 찍혀 전국에 실려나갔고 수십만 유학생과 교민들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 책임을 대신 졌다) 한국과 한국유학생들에 대한 BBS의 여론이 안 좋아지던 때에, 북대BBS에서 반한, 반유학생 감정이 확산되지 않도록 노력해 주었다.

긴 글의 내용은 이렇게 정리하고 싶다.

첫째, 표현,언론의 자유와 공동체의 질서유지 사이에서 한국은 소극적인 관리, 중국은 적극적인 관리를 기준으로 하고 있다. 아마 지금까지 받아온 사회교육의 영향, 그리고 엄청나게 차이나는 인구 때문에 그렇지 않을까 싶다.
둘째, 공동체 질서를 위한 부분은 반드시 잘못된 의견, 틀린 의견, 부당한 의견이어야지, 소수의 의견,약한 자의 의견이 되어서는 안된다. 이를 위해 관리권한을 가진 자가 이를 합당하게 행사해야 한다.


가까우면서 다른 중국, 지내면 지낼수록 새로운 경험들을 많이 하게 된다.

P.S: 물론 교내BBS의 유학생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단지 SBS나 올림픽, 혹은 갑자기 깊어진 반한감정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가 응당 책임져야 할 부분도 분명 있다. 아니 그 부분이 더 크다. BBS에는 아직까지도 안 좋은 여론들이 좀 남아있기도 한 듯한데, 남은 건 우리 북경대학교 한국유학생회가 주도적으로 하여 모든 북대 한국유학생들 스스로가 극복해야 할 몫이다.

글_ 이상준
PKU 고정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