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마와 루이스(Thelma & Louise)
평소에 영화를 즐겨보는 터라 입소문이 나있는 영화는 빼놓지 않고 보는 편인데, 이상하게 이 영화는 좋아하는 감독에, 선호하는 장르에, 흥미를 느끼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매번 볼 기회를 놓치곤 했다. 그리고 지난 학기, 한 사이트에서 이 영화에 대한 감상을 본 뒤로 본격적으로 근처의 DVD 가게를 뒤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흘러 이번 학기, 내가 이 영화를 찾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었을 즈음, 학교 앞 작은 DVD 가게에서 이 영화를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다. 가게 한쪽 귀퉁이에서 먼지를 잔뜩 뒤집어 쓰고있던 DVD를 봤을 때의 감격이란! 조금 과장하자면, 그것은 골드러쉬 때, 금광을 발견한 누군가의 희열과 맞먹을 것도 같다.
이 영화는
이 영화의 감독 리들리 스콧(Ridley Scott)에 대해서 알고 넘어가도록 하자. 그는 동생 토니 스콧(Tonny Scott)과 함께 미국에서 활동하는 영국감독으로, 헐리웃의 천재 감독이라 불린다. 동생 토니 스콧도 세계적으로 능력을 인정받는 걸출한 감독인데, 한국 대중에게도 인기가 높았던 영화로는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 <탑건>, <마지막 보이스카웃> 등이 있다. 그가 만든 영화는 대체적으로 액션이 가미되고, 이곳 저곳에서 폭탄이 터지며, 불길이 치솟는, 스케일이 큰 영화가 많다. 그에 비해 형 리들리 스콧 감독은 역시 큰 스케일을 선호하지만, 영화가 전달할 수 있는 영상의 미에 또한 주력한다는 것이 동생과 차별화 되는 점. 그의 대표작인 <글레디에이터>, <한니발>, 그리고 가장 최근의 <킹덤 오브 헤븐>을 보면 이런 공통점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스릴러를 꼽으라면 <한니발>을 빼놓지 않는다. 세 번이나 봤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았던 이 영화(물론 이 영화를 봤던 많은 사람들, 특히 비평가들은 갖은 혹평을 서슴지 않았다)는 여느 스릴러물과는 다른 중후하고, 음울하며 한편으론 화려한 영상미를 지니고 있다. 예를 들면, 노을이 내려앉는 고독하고 우울한 고성의 모습이나, 높은 곳에서 바라본 해질녘 이태리의 거리풍경 같은 것들 말이다. 감독의 이런 기호는 <델마와 루이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위의 사진들(사진 1,2,3)은 델마(지나 데이비스)와 루이스(수잔 서렌든)가 멕시코 국경으로 향해 가는 미국 남부 사막을 담은 것으로, 대황야의 풍경을 거침없이 담아낸 화면을 본다면 리들리 스콧만의 영상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내용을 소개하자면 이 영화는 식당 종업원 루이스(수잔 서겐든)와 순종적인 주부 델마(지나 데이비스) 이 두 주인공이 일상생활을 떠나 잠깐의 자유를 만끽하려 여행을 떠나는 데서 시작된다. 친구에게서 빌린 콘도로 가던 두 사람은 잠깐 바에 들르고, 술을 많이 마신 델마가 강간을 당하기 직전 그녀를 찾아낸 루이스가 강간범의 몇 마디 말에 우발적으로 총을 쏘면서 잠깐의 자유를 향한 여행은 돌아올 수 없는 도주의 여행으로 바뀌게 된다. 그들은 결국 멕시코 국경을 넘어가 새로운 삶을 살기로 결정하고 남쪽을 향해 차를 몬다. 그 과정에서 몇 명의 남자가 등장하는데 루이스의 남자친구, 그들을 나름대로 이해하고 도와주려는 한 명의 경찰, 그리고 그들의 돈을 훔치러 접근한 사기꾼(브레드 피트) 등이다. 그들의 긴 여정에서 이 남자들은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루이스는 여행 중 돈을 빌리기 위해 만난 남자친구에게서 다시금 그가 의지할 만한 존재가 못 된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고, 경찰 또한 선의는 있지만 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은 전혀 주지 못한다. 사기꾼은 물론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그 남자들의 존재로 인해 두 사람은 점점 변모해간다. 특히 델마의 모습에서 그 변화를 잘 관찰할 수 있는데 영화 초반 어수룩하고, 철 없고, 또 마음 약한 그녀는 시간이 지나고, 상황들을 맞닥뜨리면서 나중에는 과감히 권총을 들고 가게를 터는 모습까지 우리에게 보여준다. 이런 델마의 변화는 루이스와의 관계에도 반영되는데, 영화 초반에 루이스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던 델마가 점차 루이스를 챙기고 보살피는 인물로 역전되는 것이 그것이다. 이런 두 사람의 관계변화를 유심히 살펴보는 것도 이 영화를 보는 한 가지 재미라 하겠다.
이 영화의 클라이막스는 감동적이면서도 씁쓸하다. 경찰에게 황야의 벼랑까지 몰리게 된 그들은 결국 벼랑 끝까지 차를 몰기로 결심한다. 진정한 자유를 찾기 위해 함께 벼랑 끝까지 가자 다짐하는 그들의 결연한 미소와 벼랑 끝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라스트 신(그림4)은 아름다워서 감동적이었다. (감동적이어서 아름다웠을 수도…) 그러나 한편으로 총을 빵빵 쏘아대며 가게를 털고, 주유차도 폭파시키는 다분히 비현실적인 이 영화의 결론은 왜 이토록 현실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조금 비현실적이라도 영화 마지막에 뭔가 실낱 같은 희망이라도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영화를 봤던 내게 이런 결론은 무척이나 씁쓰름할 수 밖에 없다. 많은 사람들이 오늘의 델마와 루이스가 되어 “영화 속에서 조차” 존재하지 않는 이상향을 찾아 여행을 떠나곤 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말한다. 여행 후 돌아와서 그들이 마주하는 것은 결국 예전과 다름없는 현실일 뿐이라고. (영화조차도 그려주지 못하는 이상향이 현실에 있을 리 만무하지 않겠는가.)
결국 우리는 벼랑 아래로 떨어지겠다는 극단적인 결단을 내리지 않는 한 이런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인지.
마지막으로 이 영화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양성(兩性)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고, 또 내적 성장에 관한 심리분석 드라마로서 나무랄 데 없으며, 오락영화로서도 재미와 스릴을 골고루 갖춘 걸작인데다, 감독 특유의 영상미까지 곁들여져 있으므로, 소장해서 두고두고 볼만한 영화 한 편이라고 감히 추천하고 싶다.
글_서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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