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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NA/라이프

5월을 의미있게 만드는 영화 세 편

 내 인생의 소중한 사람들을 생각하다
-5월을 의미있게 만드는 영화 세 편

따뜻하다 못해 더워진 날씨, 명랑하고 활기찬 분위기, 그리고 푸릇한 주변풍경과 함께 찾아온 5월은 유난히 기념일이 많은 달이다. 기념일 행사를 하루하루 치르다 문득 달력을 보며 5월이 언제 이만큼 지나가버렸지? 의아해했던 기억 또한 다들 한번쯤 가지고 있을 듯싶다. 5월의 “특별한 날”들은 그러나 이곳에 있는 우리에게 더 이상 그만큼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중국의 5월은 한국의 그것보다 조용하다 못해 무뚝뚝하게까지 느껴지니까. 그렇다고 다채로운 색깔의 카네이션, 선물, TV의 특별 방송 등을 떠올리며 우울해 할 필요는 없을 것같다. 그러느니 차라리 분위기에 휩쓸려 습관적으로 흘려 보낸 과거의 기념일들을 뒤로하고, 그것들의 의미를 조금은 진지하게 되새겨보는 영화를 몇 편 보는 건 어떨지.
 
스승과 말썽꾸러기 제자들, 부모와 자녀, 상처받은 영혼과 그를 밝은 세상으로 이끄는 인도자의 결합은 소설이나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흔한 이야기 거리이다. 그러나 감독이 그들의 정신적 교감을 얼마나 세밀히 그려내며, 배우들의 연기가 보는 이의 마음 속에 얼마만큼 스며드는가에 따라 이런 흔한 이야기 거리는 두고두고 되새겨 봄직한 아름다운 작품으로 남게 된다. 내가 아래 영화들에게서 느낀 감동을 이 글을 보는 사람들도 느끼길 바라며 세 작품을 소개하도록 한다.


촛불 같은 스승의 사랑과 제자들의 멜로디  -  <코러스/ Les Choristes >


코러스는 2차 세계대전 직후의 프랑스를 배경으로, 음악가로서 실패한 한 교사(마티유)와 작은 마을의 기숙사 학교 학생들과의 합창을 통한 희망 찾기에 관한 영화이다. 영화를 본 지 2년이 다된 지금도 <코러스/ Les Choristes >하면 영화 속 모항쥬라는 미소년(!)의 티없이 맑은 천상의 목소리와, 그 촌스러운 포스터가 생각난다. 클래식 기타 연주자였다는 감독이 프랑스의 순회공연 중인 합창단을 일일이 찾아 다니며 영화에 출연할 소년들을 캐스팅했고, 또 스스로가 OST 중 두 곡(themes "Cerf-Volant", "Nous sommes de Fond de l'Etang")을 작곡하기도 했다니, 영화의 배경음악과 소년들의 빼어난 합창만 들어도 배가 부를 듯하다. 그리고 제각각 어색한 표정과 자세로 마치 오래 전 시골 동네의 마을사진을 연상케 하는 한 장의 포스터는 그 자체만으로도 보는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이 영화의 축소판이다.
천방지축의 말썽꾸러기들이지만 저마다 나름의 아픔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 하나 하나를 지켜보고, 또 그들의 합창이 점점 조화롭게 변화해가는 것을 귀 기울여 들어보는 것도 이 영화를 더욱 즐길 수 있는 방법이다. 마티유 선생님과 아이들의 서로에 대한 눈빛이 점점 부드럽고 따뜻해지다, 마지막 서로 헤어지게 되었을 때 아이들이 날리는 종이 비행기와 선생님에게 선사하는 합창의 감동은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책상을 밟고 올라서며 '캡틴! 오 마이 캡틴!'을 외치던 학생들의 그것에 전혀 뒤지지 않는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이 영화가 내게 남긴 최고의 선물은 역시 어두운 화면의 크레딧과 함께 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잔잔히 밀려드는 감동을 음미하는 그 순간인 것 같다.
다들 한 번 느껴보시길~


부모의 희생을 생각하다 - 투게더《和你在一起》


이 영화는 张艺谋 감독과 더불어 중국 5세대 감독의 대표주자이자 작년에 개봉한 <无极>의 감독이기도 한 陈凯歌 감독의 2002년도 작품으로, 실화를 바탕으로 하여 아버지와 바이올린을 켜는 아들의 이야기를 담아놓았다. 영화 촬영 스텝 중 상당 부분(조명감독, 촬영감독, 디자이너 등)이 한국사람이라는 것도 주의를 끄는 점이다.
중국영화를 보고 실망한 적이 많아 점차 중국영화를 기피하게 되던 중, 수업 시간 사이에 시간 때우기로 본 이 영화는 내게 의외의 소득을 안겨주었다. 그 첫 번째는 캐스팅. 아버지 역할을 한 중견배우의 연기도 좋았지만, 아들 小春으로 분한 唐韵가 뿜어내는 순수하지만 내성이고 또 우울한 분위기는 영화 속 주인공과 놀랍도록 일치해있었다. (실제로 그 또한 주인공과 비슷한 배경의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라고…… )영화를 보는 내내 현실의 실제 주인공을 데려다 연기를 시킨건가? 하는 의문이 들었을 정도.
대략 내용을 소개하자면, 시골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刘成에겐 동네에서 바이올린 천재라고 불리는 小春이라는 아들이 하나 있는데, 지역 음악 콩쿨에서 1등을 거듭하던 小春은 북경에서 열리는 콩쿨에 참가하게 되고, 刘成은 그 기회에 북경에 눌러앉아 어떤 고생을 해서라도 小春의 뒷바라지를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다. 그리고…… 음~ 그 뒤가 궁금하다면 영화를 보시라~!
부자의 사랑이 진하게 베어 나오는 이 영화는 마지막 小春의 바이올린 연주 장면에서 그 대미를 장식한다. 바이올린의 아름다운 선율과 어우러지는 엔딩이 아름다워 더욱 기억에 남는 영화.
 
<코러스>와<투게더> 두 영화 모두 이름난 배우가 출연하지도 않았고, 촬영 기법상 특별한 기교나 기술이 들어가지도 않은 소박한 영화들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오래도록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건, 이 영화들이 평범한 그들의 평범하고도 따뜻한 마음을 전하는 영화이고, 그 마음이 비범하게 빛나는 음악 속에 담겨져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은 내게 인생의 역경을 헤쳐나가는 힘을 실어준다 - <Good will hunting>


어릴 적 본 영화는 영화 전체의 스토리나 구성보다는 단편적인 장면만을 기억할 때가 많다. 그래서 가끔 오래 전에 봤던 영화를 다시 보면서 그 영화를 처음 보는 것 같은 신선함을 느끼곤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Good will hunting>을 봤을 것이다. 워낙에 홍보도 많이 됐었고, 주연 배우도 헐리웃에서 유명하기 그지 없는 로빈 윌리엄스와 맷 데이먼이니까. 근데 이 영화를 본 사람들 중 윌(맷 데이먼 분)과 숀(로빈 윌리엄스 분)이 어떤 아픔을 가지고 있었고, 서로가 서로의 아픔을 어떻게 치료해갔는지 기억하는 사람이 있는지……?

선생님이나 부모님이 아니어도, 자신과 비슷한 아픔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리고 그 상처를 이미 극복했거나 자신과 함께 극복해나가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주변의 그 누구보다 큰 의지가 될 것이다. 윌에게 숀이 그랬고, 숀 또한 윌과 함께 하면서 자신의 아픔을 극복해나가게 된다. <잭>이나 <미세스 다웃 파이어>등의 가족영화로 ‘따뜻하고 친근한 분위기의 옆집 아저씨’의 대명사가 된 로빈 윌리엄스의 깊이 있는 눈빛연기는 이 영화에서 더욱 빛을 발했고, 맷 데이먼과 함께 이 영화의 각본을 쓴 벤 에플렉(<진주만>, <저지걸>, <지글리>등에 출연)의 연기 또한 (생각보다)무척 괜찮은데, 그의 윌에 대한 우정을 그린 부분도 이 영화에서 놓칠 수 없는 한 부분이다.
<Good will hunting>을 조금만 주의 깊게 보면 감독이 주인공의 심리와 배경의 매치를 꽤 신경 썼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런 만큼 기억에 남는 장면도 많다. 예를 들면, 윌이 해질녘 창 밖을 배경으로 지하철에 앉아있는 모습, 마지막에 윌이 사랑을 찾아 길을 떠나는 모습, 숀의 상처입고 외로운 모습을 표현하기 위한 어둡고, 눅눅한 실내와 늘어서 있는 빈 술잔들 등등.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기억에 남는 한 장면이 있다면 그건 윌이 숀에게 진심으로 마음을 열어 보이는 부분(사진 3)일 거다. 과거의 상처를 벗어나지 못한 채 자포자기한 삶을 살아가는 윌에게 숀은 악몽이 되어버린 윌의 과거에 대해 “It’s not your fault”라고 힘있게 말한다. 한 번, 또 한 번, 또 한 번……
누군가가 상대방 마음 속 깊은 곳까지 들어가 그것을 어루만져 줄 때에만 그 상처는 치료될 수 있고, 그 사람을 완전히 이해하고 느낄 수 있게 된다. 한 번, 두 번, 세 번 지치지 않고 내 마음의 문을 두드려 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리고 내게 마음 깊이 받아들인 누군가가 있다면 우리모두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윌에게 숀이 그랬고, 숀에게 윌이 그랬던 것처럼.


바삭한 토스트에 살포시 녹아 드는 버터처럼, 영화는 사람에게 스며들어 그 사람에게서 예전과 다른 향이 나게 만든다. <코러스>, <和你在一起>, <Good will hunting> 또한 사랑과 감사의 이름으로 당신에게 감미롭고, 부드러운 향기를 선물하리라 믿는다.
위 세 편의 영화들과 함께 날씨만큼 마음도 따뜻해진 5월이 되길 바라며~

 

글_서현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