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PKU/캠퍼스&라이프

베이징올림픽 북대 자원봉사자 수기

2008베이징올림픽 자원봉사자 수기
“여기는 올림픽 주경기장, 자원봉사자! 올림픽 준비 이상 무!”

베이징올림픽? 자원봉사자?
   심천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나는, 대학에 진학하면서 심천에서 북경으로 다시 한번 유학 아닌 유학을 오게 되었다. 정든 내 고등학교 친구들은 내가 “북경대학” 이라는 명문대에 진학하게 된 것을 기뻐해주고 부러워했다. 그때 모든 친구들이 내게 빠뜨리지 않고 했던 말이 있다. “와! 넌 베이징올림픽을 볼 수 있겠구나!” 지방에 사는 그들은 베이징올림픽을 직접 볼 수 없는 것을 너무나도 안타까워했다.

   이번 베이징올림픽의 개최는 전 중국과 중국인들에게 ‘세계적인 체육행사’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짐에 틀림없다. 이는 중국이 어렵게 얻어낸 기회이기도 하고, 다시 한번 세계무대를 향해 도약할 수 있는 발판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올림픽을 개최하는 도시 베이징뿐 아니라 국가적인 차원에서, 그리고 온 국민들이 하나가 되어 올림픽의 성공개최를 기원하고 기대하며 지지한다.
   내 친구들의 부러움, 그리고 중국이 이번 올림픽에 부여하는 각별한 의미를 생각하니 내게 찾아온 이 기회가 더 값지게 느껴졌다. 올림픽이 열리는 기간에 개최도시에 머무는 이런 우연한 영광이 내게 오다니! 그런데 올림픽게임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면? 아니야, 아예 내가 중국의 (유학생이지만) 대학생의 일원으로서 베이징올림픽을 위해 일할 수 있다면? 올림픽 분위기를 베이징에서 느낄 수 있다는 내 우쭐함은 어느새, 올림픽 자원봉사자가 되고자 하는 희망과 열정이 되어버렸다.

‘나를 자원봉사자로 뽑아주세요’
   이미 베이징올림픽 자원봉사자로 선정된 지금, 되돌아보면 그 동안 운이 많이 따라준 것 같다. 처음에는 막연하게 자원봉사를 하고 싶은 마음에 학교 홈페이지를 통해 올림픽위원회의 신청서를 냈었다. 그러던 중 운 좋게도, 북경대학 신문방송학부 학생들을 우선으로 하여 올림픽 매체 전문 분야의 자원봉사자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신청하여 경쟁률이 매우 높은 일반 자원봉사신청에 비해, 매체 전문분야 지원은 신문방송학부 학생으로서 치열한 경쟁 속에서 어느 정도 특혜(?)를 받을 수 있고 내 전공지식도 업무에 적용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소식은 내게 매우 반가울 수 밖에 없었다.
   같은 과 친구들과 얼른 이것 저것 준비해서 신청을 했고, 이것이 무려 2006년 11월의 일이다. (자원봉사의 업무는 관중석 안내부터 통역, 시상식 서비스까지 매우 다양한데, 그 중 전문지식과 기술을 필요로 하는 의료, 매체 등 몇몇 전문 분야도 있다. 전문 분야에서는 일찍부터 특정 학교로부터 지원자들을 모집해, 긴 교육 기간을 거쳐 엄격하게 자원봉사자를 선발한다.)
   올림픽 매체 전문 분야 자원봉사에 대한 설명회를 처음 갔을 때부터, 올림픽위원회 사람들은 이 자원봉사자 선발과정이 그리 녹록지 않을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그 이후로 수시로 열리는 올림픽 강의에 긴장을 늦추지 않고 참석해야 했고, 방학 때 귀국을 미루고 교육을 받아야 했으며, 학기 중에도 관련 수업을 수강하기도 했다. 혹자는 자원봉사 그게 뭐 대단하느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이 경험이 다소 밋밋한 내 대학생활에서 잊지 못할 화려한 이벤트가 될 것이라 기대했고, 심지어는 평생에 단 한번 찾아올 바로 그 기회라는 생각까지 했다. 그만큼 간절해서였을까, 웬만하면 우습게 보고 말았을 자원봉사자 교육에 (잘리지 않기 위해!) 꼬박꼬박 참여하며 올림픽과 올림픽 매체에 대한 지식을 차곡차곡 쌓게 되었다.
언제쯤 내게 “넌 이제 베이징올림픽 자원봉사자다” 라고 확정을 내려줄까 답답해하고 있을 때 즈음, 드디어 최종 면접을 보러 오라는 통지를 받았다. 매체 전문분야 자원봉사도 ONS(Olympic News Service), VMC(Venue Media Center), PHO(Photo service) 세 개의 세부부문으로 나누어지는데 나는 PHO부문의 면접을 보기로 했다. 자원봉사자를 하겠다고 면접관 앞에 앉아있는 한국인 여학생에게 면접관들은 친절하게 중국어와 영어로 이것 저것 간단히 질문했고, 비교적 수월하게 면접을 마쳤다. 며칠 뒤 매체부문 PHO 자원봉사자로 확정이 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듣게 되었는데, 마음 졸이며 고생했던 지난 1년을 생각하니 힘이 풀리기도 했다.

“好运北京”, 드디어 실전 연습에 돌입!
   시간은 정말 무섭게도 흘러갔고, 무서운 속도로 진행되던 베이징올림픽의 준비도 얼추 다 된 듯 보인다. 이제는 나도 베이징올림픽 정식 자원봉사자로서, 완공된 북경대학 내의 탁구경기장, 올림픽 주경기장(별칭은 鳥巢, Bird’s Nest이다.)도 참관해보고 실전을 위해 주경기장에 대한 공부와 위급상황 대처 방법에 대한 훈련을 받게 되었다.
특히 자원봉사자들뿐 아니라, 올림픽을 위해 일하는 모든 이들과 운동 선수들을 위해 열리는 올림픽대비 테스트 대회는 다가올 올림픽을 위한 연습과 재점검의 시간이다. 중국은 올림픽의 성공개최를 기원하며 이번 테스트 대회를 “好运北京”이라 이름 지었고, 4월에는 마라톤과 경보, 5월에는 육상의 테스트 대회가 열렸다. 그리고 나는 매체부문의 내부사정으로 이번 테스트대회에서는 원래의 PHO(사진 촬영)부문이 아닌 TV중계 부문으로 잠시 봉사하게 되었다. 올림픽 때에는 주경기장 내의 사진기자의 촬영현장이나, 그들의 작업실에서 일하게 되겠지만, 이번 테스트대회에서 경험한 TV중계 부문 봉사 역시 즐겁고 새로웠다.
   TV중계 부문은 작업실이 따로 없기 때문에 자원봉사자도 주로, CCTV를 비롯한 중국 방송사들과 세계 여러 나라 방송사의 기자와 카메라맨이 촬영하는 현장에서 일해야 했다. 1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 고생하며 배운 것에 비하면, 하는 일은 간단한 편이다. 기자들이 목에 매고 있는 신분증으로 그들이 그 구역에서 촬영할 수 있는지 여부를 확인 및 관리해주고, 촬영 중 기자들에게 제한되어 있는 행동이나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충돌, 사고를 막는 일이 주된 업무다. 좋은 위치에서 촬영을 하려고 온갖 수단을 가리지 않는 기자들의 투철한 직업정신과 일부 기자들의 까칠함에 맞서기 위해서는, 웃는 얼굴과 부드러운 말투로 회유책을 펼쳐야 한다는 노하우(?)도 생겼다. 실제로 이번 육상 테스트대회에서, 중국의 영웅이 되어버린 지난 올림픽 남자 110m 허들 금메달리스트 刘翔의 경기가 끝나자마자, 그에게 인터뷰를 시도하려는 기자들이 규정을 어기고 너도나도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고 앞으로 달려가려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자원봉사자는 엄격하게, 하지만 기자와의 충돌이 발생하지 않게 예의를 지키며 그들을 통제해야 했다. 이렇게, 자원봉사자는 언제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르므로 순발력이 요구되며, 현장에서는 앉아있지 못하고 계속해서 서서 움직여야 하므로 강한 체력도 필수적이다. 특히 오전근무는 이른 아침부터 시작되고, 오후근무는 새벽1시가 되어서야 끝나는데, 실제 올림픽 기간에 이렇게 매일매일 고생할 것을 생각하면 사실 지금부터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물론 면접 시에는 자신 있다고 말했다 하하).

우리 자원봉사자들, ‘한 자리 하나?’
   말 그대로 자원봉사이니 보수는 당연히 고사하고, 물질적으로 제공받는 것은 물과 (흐뭇하게도 양도 많고 맛도 괜찮은)도시락밥, 대중교통 무료이용이 가능한 스티커가 전부다. 일개 대학생 자원봉사자라고 기자들에게 무시당할 수도 있고, 더운 날씨에 이리저리 뛰어다니느라 몸이 아주 고단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난 왜 그렇게 이 힘든 일을 그토록 갈망하였고 아직도 8월의 실전을 기대하고 있는 걸까. 가족과의 편안한 휴식, 탐나는 인턴기회, 수입이 짭잘한 아르바이트 자리를 다 뒤로 하고, 자원봉사를 선택한 내가 2008년 8월 이후 얻는 것은 무얼까.
   분명, 나는 그 큰 올림픽주경기장의 그 많은 자원봉사자 중의 한 명일뿐이다. 내가 하는 일도 어떤 이에겐 ‘별 것 아닌’ 그런 작은 일로 치부될 수 있다. 하지만 ‘자원봉사자는 올림픽의 꽃’이라는 그 말처럼, 우리 자원봉사자들은 올림픽에서 없어서는 안될, ‘한 자리’하는 사람들이다. 자원봉사자 한 명, 한 명이 모여 올림픽이라는 세계인의 축제에 큰 힘이 될 수 있고, 작은 일이라도 그 ‘한 자리’에 대한 책임감과 사명감을 갖고 임할 때 그 힘은 더 커진다.
   나를 위해서가 아닌, 어느 영리단체를 위해서도 아닌, 올림픽이라는 세계인의 행사 그 자체를 위해 봉사라는 것을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벌써부터 가슴이 벅차 오른다. 사실 ‘시켜만 준다면 밖에서 쓰레기라도 줍겠다’는 좋게 말하면 단순, 순진하고 나쁘게 말하면 생각 없는 갈망을 했던 예전을 회상하면 괜히 머쓱해지지만, 지금 내가 맡게 된 이 작은 일에 자부심과 사명감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활활 타올라온다. (쓰레기 줍는 일을 비하하는 것이 아니라 경기장에는 청소를 담당하는 직원들이 이미 따로 있기 때문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 그때 한창 걸음마를 배우느라 바빠서 놓쳤던 그 기회를. 앞으로 사회에 나가 다른 일에 바쁜 시기에 개최도시를 찾아 다니며 난리를 치지 않는 이상, 언제 또 내게 올 수 있을지 모르는 이 기회를. 올해 8월 베이징올림픽의 뜨거운 열기를 각 매체를 통해 전 세계인들에게 전달하는데 (정말 작게나마) 한 몫을 할 수 있는 이 기회를. 감사하게 여기며 주경기장 한 구석의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보려고 한다.

   유난히 사전에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베이징올림픽이지만, 세계인의 화합을 위한 축제, 베이징올림픽의 성공개최를 기원하며, 특히 나! 그리고 다른 모든 자원봉사자들, 모두모두 파이팅!

글_김새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