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PKU/캠퍼스&라이프

K군의 유학일기

K군의 까다로운 하루

   지독한 생리통에 시달리는 까다로운 디바의 심정으로 오늘 하루를 시작한다. 마음속에서 용솟음 치는 이 까다로움은 무엇인지….
   오후 수업을 가기 위해 난 오늘도 아침 10:30분쯤 일어나서 뉴트로지나 딥 클렌저와 함께 하루를 시작한다. 광고 속의 려원처럼 상큼하게 세안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잠에서 덜 깬 나를 깨우고 있다는 점은 확실하다.
언제나 그러하듯 학교를 가기 위해, 난 737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디바 머라이어 캐리 처럼 단 5분도 기다릴 수 없는 급한 마음이 잔뜩 들었다.
  
   왜냐하면 5-6교시에 또 지각할지 모른다는 마음 때문이다.
   8옥타브의 디바처럼 매 수업시간마다 1시간씩을 지각하는 나로선 “지각하지 말자” 라는 각오를 지키고 싶지만, 오늘도 버스가 나를 도와주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너무 늦게 나온 것인지 모르겠다. (물론 나의 디젤 시계는 씩씩하게 12시를 향해 바늘을 힘차게 돌리고 있다.)

   매일 타는 737이지만, 구질구질한 버스 안이 너무 싫다. 한 겨울에 몸을 휘감는 플라스틱 의자의 얼음장 같은 차가움도 싫고 말이지… 마음속에서는 이미 737 번 버스 회사에 A4용지 100장을 넘길법한 까다로운 요구사항을 적어내려 가고 있다.
   “실내장식은 모두 화이트로 배치하고, 스코틀랜드산 캐시미어 담요로 좌석의 따뜻함을 유지하고, 상쾌한 아침을 위하여 100% 캘리포니아산 오렌지 주스를 준비하고, 경쾌한 숙변을 위해 알프스산 정상에서 끌어온 차가운 물을 준비하고, 11월 달에 산란을 준비하는 건강한 암 거위의 가슴 털로 만든 소파를 준비하되, 4개 이상은 준비하지 말 것. 그리고 끝이 구부러진 핑크 스트로우는 언제나 배치되어 있어야 하며, 끝부분은 비닐로 꼭 밀봉을 하여야 한다. 아라모드 애플파이는 적당히 데워서 약간의 김이 나게 유지하지만, 아라모드 잼이 나의 입천장을 데지않도록 온도유지에 각별히 신경 써야 하며, 계단 따위를 오르고 싶지않은 나를 위해 에스컬레이터를 2미터 정도 설치한다..” 등등 말도 안 되는 미친 생각을 하며 버스를 기다리고.. 
  
   드디어 기다리던 737 현실은.. 민공(民工)의 습격으로 버스 안은 그 어떤 아로마 요법보다 강한 냄새가 가득 하고, 발 한쪽 놓기도 힘들 정도의 비좁은 공간에서 자신의 와일드한 운전솜씨를 십 분 발휘해 주시는 기사선생님 덕택에 깨끗하게 씻고 온 나와 씻었는지 조차 감별해 낼 수 없는 버스 이용자들이 아침부터 본의 아니게 접촉을 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이 또 다시 반복된다.
   게다가 출근 시간이라 차가 어찌나 막히던지…뉴요커들의 아침처럼 가방 속에 들어있던 사과와 오렌지 주스를 즐길 여유는커녕, W매거진 조차 볼 수 없는 최악의 1시간 이었다. 아침마다 최근 트랜드를 체크하고 싶은 나는 교통난에 시달려서 잔뜩 찌푸린 얼굴로 학교에 도착하였다.
  
   수업 시간 이다. 전공 서적에서는 쾌쾌한 냄새가 난다. 얼마나 펴보지 않았으면 이럴까 하고 나 스스로를 또 한번 자책했다. 곰팡이가 잔뜩 필 것 같은 느낌의 나의 전공 서적은 천사 가브리엘과 그의 동료 천사들을 불러 이곳이 천국이라고 말해도 될 정도로 깨끗하고, 정갈하게 단 한글자도 적혀있지 않았다. 마치 여백의 미를 지나치게 강조한 구찌의 한복응용 드레스처럼.
   정갈한 나의 교재를 보면서 난 펜을 잡았다. 그리고는 어느새 딴 생각을 하고 있다. 가장 주된 단골고객은 , ‘내가 과연 전공 선택을 잘 한 것인가, 아닌가’ 이다. 물론 내가 원해서 들어왔지만, 사실 난 이 학문에는 전혀 관심 없었다. 어쩌면 꽤 많은 학생들이 고민하고, 느끼고 있는 상황일 것이다. 이라크와 미국의 갈등이 고조에 달하여 미국에 핵 폭탄이 떨어졌다고 하여도, Dolce & Gabana 2006 S/S컬렉션에 더 관심을 기울일 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패션을 전공하고 싶다는 말은 결코 절대 아니며, 그저 완벽한 비유를 위한 것이니 오해 하지 말기를…)

   시간이 흘러 멍해져 있는 나를 잠시 깨운 것은 레포트에 관한 내용과, 채점 기준 등등 이었다. 이럴 때는 뇌파는 어느새 mc스퀘어의 집중모드의 음성을 내며, 나의 곤두선 중추신경은 완벽한 집중력으로 모든 상황을 체크하고, 적어 내려간다.  정말 웃긴 일이다. 점수 따려고 대학에 다니는 건지, 인간이 되기 위한 소양을 쌓기 위해 다니는 것인지….
   렌즈의 빡빡함을 느낄 때쯤, 나는 사람들의 소란스러움을 느끼며 잠에서 깨었다.  “이런 에이스 침대에서 주무셨군요” 라는 문구를 나레이션으로 깔아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난 심하게 퍼질러 잤다. 오늘도 아무 소득 없이 수업시간을 끝내고, 나는 또 한번 우울했다. 몇 달째 아무 느낌 없이 수업을 끝내고, 아무 내용도 머리 속에 들어있지 않은 채 하루를 마감하고 있으니까. 계속되는 논스톱 수업을 끝내고, 에스테로더의 비욘드 파라다이스 향수처럼 은은하게 내려가는 석양과 밤의 공존이 가득한 시각에, 몇 주 남지 않은 공연 연습을 하러 수청목(水清木公寓)으로 향했다.
  
   대학생활을 통틀어 가장 열정적으로 하고 있는 동아리 활동. 동아리 활동은 정말 활력 넘치는 일이다.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지쳐버린 마음이 꽤나 많은 회복선을 그리고 있으니까. 연습을 마치고 집으로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며, 빠트리샤 캬스의 “La via en lose”를 흥얼거린다. 장미빛 인생을 회상하는 건지 원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불어의 여러 번 꼬는 발음의 운치가 살짝 쌀쌀한 이 밤에 잘 어울린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또 한번 까탈스러운 생각을 한다. 도대체 오늘은 뭘 한 걸까. “전혀 만족스럽지 못한 하루야.” 라고 나 스스로에게 앙칼지게 자책하고 있다. 책상 앞에 붙어있는 계획서가 무색하게 나는 어느새 오자마자 DVD를 돌리고 있다.( 계획표에는 하루에 한 시간 영어 단어 외우기, 비즈니스 중국어 공부하기, 예습 복습 철저히, 2시간씩 책 읽기, 운동 열심히 하기 등이 적혀있다. 일주일 정도는 지켜보려고 했었던 것 같다)

   어느새 컴퓨터에 앉아 싸이월드, Daum, MSN수다떨기, NATE ON체크..를 하면서 4시간 이상 컴퓨터와 지독한 사랑을 나누고, 새벽 2시쯤이 되어서 난 잠자리에 든다.
   오늘도 자기 전에 다짐한다. ‘내일부터는 확실히 살자’ 라고 말이다. 다짐이라는 단어가 무색할 정도로 너무 많이 번복해서 문제지만…

To Be Continued...
                                                                                                                                                글_ K 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