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HINA/기타

중국의 악기를 소개합니다 -얼후(二胡)

중국 악기편: 얼후 (二胡)

2008베이징올림픽폐막식에서 연주되었던 얼후는 중국 현악기 역사 중 천년이란 역사를가지고 있는 오래된 악기 중 하나다. 또한 근대 민간 예술 및 현악기 중에서도단연으뜸으로 치며, 사람들로 하여금 “동방의 바이올린”으로 불리고 있다.

역사와 변천(變遷)

  오늘날의 얼후는 송나라의 해금(奚琴)에서 변화 및 발전을 거쳐 내려온 것으로, 비파, 필률(한대(漢代)에 서역(西域)으로 부터 전래된 피리의 일종),공후(옛날 현악기의 일종)등 모두 변방에서 중국으로 들어온 악기이다. 얼후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얼후는 2개의 현으로 이루어진 호인(胡人)악기로 역사상 중원(中原)사람들은 북방의 소수민족을 호인이라 일컬었다.
  당시 해족(奚族)은 중국 동북 지방에 살았던 소수 민족으로 당나라 안록산(安祿山)반란때 기단(契丹)족과 더불어 제일 용맹했던 소수민족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한 때 해족의 ‘해(奚)’자는 ‘호(胡)’(당시 중국 북방, 서방 소수 민족을 일컫는 통칭이다)자를 대신할 만큼의 지위까지 오게 되었다. 그 후 해금(奚琴)은 오늘날의 호금(胡琴)으로 변형 되었다. 
  얼후가 오래된 역사를 가진 알기라 일컫는 또다른 이유는 중국의 현악기는 두드려 소리내는 현악기에서 발전되었기때문이다. 춘추전국시대의 판자모양으로 되어 두드려 소리내는 현악기 “축(築)”은 두드려 소리내는 현악기에서 눌러 소리내는 현악기로 바뀌었고, 그러므로써 압쟁(軋箏)이 생겼다. 

  뒤이어 중국 호금류의 현악기가 출현하였다. 해금의 현은 지금 현재의 금현이 아니라 대나무 조각이나 나무 막대기를 현의 재료로 사용하였고, 그러므로 대나무 조각을 물에 적신 눌러 소리내는 기법과 켜는 기법이 출현하였다. 당나라때 이런 켜서 소리내는 악기 압쟁과 해금이 출현하였고, 그 후 송나라때 “말꼬리털호금”도 생겼다. 이때부터 말꼬리털로 켜서 소리내는 방법이 해금류의 대나무 조각으로 눌러 소리내는 기법을 대신하기 시작했다. 원나라 호금의 형태는 “권경(卷頸), 용수(龍首), 이현(二弦)”이 있고, 이때는 이미 현대 호금의 모습에 많이 가까워진 상태다.

얼후(二胡), 이름의 유래
얼후라는 이름은 근대에 이르러서야 붙여진 이름이다. 
 
  송나라 이후 해금은 민간에 널리 펴졌으며, 각지에서는 그 지방의 지리적 조건과 음악적 특징 및 심미 습관에 따라 해금을 기초로 여러가지 현악기가 탄생했으며, 명나라 중엽 이후에는 “호금”이라 통칭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징후(京胡)와 얼후(二胡), 그리고 얼후에서 파생된 까오후(高胡), 쭝후(中胡)이다.
  여기서 주의 할 점은 반후(板胡)는 호금의 일종이 아닌, 명나라 4현악기(提琴)에서 발전된 것으로 해금으로 부터 유래된 호금과는 다르다. 단지 후세에 호금의 명성이 커진 후 사람들이 “호(胡)”라고 불렀을 뿐이다. 얼후는 민간에서 오랫동안 유행한 악기로 처음에는 민간 가곡이나 반주 악기로 쓰였다. 청나라 말기 민간 작은 공연 부터 반주악기 대부분은 얼후를 사용하였고, 동시에 민간 관련 음악과 도쿄음악에 사용되어왔다. 비록 대중들 사이에서 비교적 기본적이고 친숙한 악기이지만, 이때껏 단지 명절때 흥을 돋우는 정도로만 사용되어 왔다.

  이 방면의 민간 예술인의 사회지위에선 설창(說唱)이나 희곡예술인 보다 낮고, 이 예술인들이 결혼식이나 장례식의 설창, 희곡에 반주를 맞추거나, 불교,도교 사원에서 활동하는 일은 매우 운이 좋은 경우다. 그 중 어떤 사람은 방랑자 심지어는 거지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중국현악기의 역사를 말하자면, 중국에서 관악기, 타악기, 현악기 중 얼후를 포함한 현악기가 가장 늦게 형성 되었고, 연대로 보면, 금,쟁,비파,피리,관,수르나이등은 전부 풍부한 연주곡들을 가지고 있고, 연주기술 방면에서도 각자만의 체계와 심미기준이 형성되어있지만, 얼후는 경험상 전해져 내려오는 이론 외에 다른 것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20세기 후부터 얼후는 크게 발전하기 시작했다. 5.4운종전후, 신구의 문화가 충동하는 가운데, 새로운 환경중의 옛문화의 문명, 즉, 전통예술이 미래에 차지할 수 있는 지위, 어떤방향으로 발전해 나갈 거인지는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유천화(劉天華)는 전통 얼후에 개혁을 시작한 가장 대표적인인물이다.
그는 악보를 개선하고, 교재로 새로 만들며 노력한결과, 얼후는 중국 학교 수업내용에 포함되었으며, 독주(獨奏)문화가 생기게 되었다. 그러므로써 얼후는 민족악기 중 제법 높은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비록 현악기의 역사는 짧지만, 중국 개혁개방 후 얼후는 더 큰 발전을 하게 되었다. 20세기 20-30년대 유천화의 10대 명곡이 나왔고, 40-50년대 아병(阿柄), 손문명(孫文明)등의 《二泉映月》, 80-90년대의 《長城隨想》,《蘭花花》,《一枝花》는 얼후가 눈부신 활약을 하는데 직접적인 역할을 하였다. 상세한 통계에 따르면, 이런 곡들은 대략 천곡이 넘고, 그 중 우수작들은 중국 예술의 긍지를 느낄 수 있게 한다. 그래서 얼후 예술인들은 “國樂正聲”이라는 칭호에서 자부심을 느낀다.

출처_기존블로그
글_전은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