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자, 중국 속의 세계로!
(2005년1월)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겨울방학이다. 하루종일 理教에 앉아 방학만을 기다리던 나는 기말고사의 스트레스를 뒤로 하고 중관촌 신화서점을 향해 달려가 디자인과 구성이 독특한 홍콩여행책자 한 권을 골랐다. 이번이 벌써 세번째로 가는 홍콩이지만, 처음으로 나홀로 여행을 떠나는지라 치밀한 계획을 짜서 홍콩의 매력을 120% 느껴보고 싶었다. 몇 번을 가도 항상 내 마음을 설레게 만드는 홍콩. 동양문화와 서양문화의 미묘한 조화를 맛볼 수 있는 그 곳, 홍콩을 다시 한 번 체험해본다.
“타도 후진타오! 타도 중국공산당!”
홍콩은 정말 특이한 곳이다. 중국의 일부분이면서도 출입경(出入境)을 위해 세관을 거쳐야 하는 곳. 전체 면적이 그리 크지 않으면서도 세계 여러 도시의 특색을 한꺼번에 느껴볼 수 있는 곳. 풍부한 자원이 없으면서도 굉장히 다양한, 그리고 대부분 세금을 면제 받는 상품들과 만나볼 수 있는 곳. 바로 이런 평범하지 않는 점들이 겨울방학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하고 있던 나에게 홍콩을 매력적인 여행코스로 다가오게 만든 것이 아닐까?
북경에서부터 26시간이 넘는, 결코 짧지는 않지만 양질의 서비스와 창 밖으로 보이는 광활한 대륙의 풍경이 지루함을 덜어주는 기차여행 끝에 드디어 도착한 홍콩. 구룡반도(九龙半岛) 동쪽에 위치한 홍흠(红墈)기차역을 나서자마자 가장 먼저 나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중국 정부지도자와 공산당을 비판하는 법륜공(法论功) 광고판들과 침묵시위를 하고 있던 신도들이었다. 같은 중화인민공화국임에도 불구하고 ‘일국양치(一国两治)’라는 사회주의체제와 자본주의체제를 독특하게 결합시킨 제도 아래 차량주행방향부터 화폐, 언어, 법체계까지 중국본토와 판이하게 다른 홍콩을 몸소 체험할 수 있는 기회였다. 중국정부가 어떻게 이런 모순을 지혜롭게 해결해 나갈지 더욱 궁금해진다.
홍콩중문대학
2학년 1학기 때 전공수업을 함께 들었던 홍콩친구들이 있었다. 이들은 바로 홍콩의 명문, 아시아에서도 높은 순위에 드는 홍콩중문대학(香港中文大学, The Chinese University of Hong Kong)에서 우리 학교에 교환학생자격으로 공부하러 온 친구들이다. 모처럼 홍콩까지 왔는데 홍콩의 대학생들은 중국본토의 대학생들과 어떻게 다른지 직접 보고 말리라 다짐하면서, KCR(Kowloon Canton Railroad) 대학(大学, University)역에서 내려 친구가 나타나길 기다렸다.
중문대학은 교정이 홍콩 신계지(新界, New Territory) 지역 동쪽 산등성이에 자리잡고 있는지라 친구와 나는 교내셔틀버스를 타고 멀티미디어 도서관이 있는 联合校园(United Campus)까지 올라갔다. 반세기 이상의 역사를 가진 홍콩중문대학은 1936년 New Asia College, Chung Chin College, United College 세 학교가 통합되어 설립이 되었고, 뒤이어 1986년에는 Shaw College가 다시 통합이 되어 현재의 종합대학이 되었다. 中央校园(Central Campus), 崇基校园(Chung Chi Campus), 联合校园(United Campus), 新亚校园(New Asia Campus), 逸夫校园(Shaw Campus), 그리고 일부는 아직 개발 중인 校园东区(Eastern Campus) 총 6개의 캠퍼스로 그 큰 규모를 자랑하는 중문대학에서, 나는 홍콩 대학을 잠시나마 몸소 느껴볼 수가 있었다.
홍콩은 한국이나 중국본토와는 달리 3년제 학부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수업이 영어로 진행되고, 수업방식 또한 영국 등 서구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교내식당 중의 하나인 ‘Coffee Corner’에서 친구들과 간단한 간식을 먹고 중앙도서관을 가로질러 학교 정문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데 눈에 확 띄는 플랜카드가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哭中大’라고 쓰여진 플랜카드 밑에는 중문대학 학생들이 이개국어(중국어/영어) 교육시스템을 폐지하고 전과정을 영어로만 이수해야 한다는 학교측의 새로운 방침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고 우려를 표하는 포스터들이 붙여져 있었다. 학생들이 학교에 대항하여 자신들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있는 현장에서, 나는 다시 한 번 내가 다니고 있는 중국본토의 대학과 홍콩의 대학 사이의 커다란 차이를 몸소 느낄 수 있었다.
The Age of Knowledge, 三联书店(Joint Publishing)
친구들과 작별을 한 후, 다시 KCR을 타고 사전에 계획했던 도보여행을 위해 홍콩아일랜드로 향했다. 따스한 햇살을 온 몸으로 받아가며, 나는 어드미럴티(Admiralty)에서 완차이(湾仔)를 향해 헤네시로드(Hennesy Rd.) 위를 여유롭게 거닐고 있었다. 순간 오른편에 잡지나 모터쇼에서나 볼 수 있었던 세련된 스포츠카들이 한 줄로 주차되어 있는 광경을 발견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곳이 그 유명한 자동차 판매상들이 모여있는 곳. 훗날 그 차들 중 한 대의 운전대를 잡고 있을 나를 상상하며, 30분 넘게 걷고 있었던 나의 지친 두 다리에게 잠시 휴식의 시간을 주었다. 다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눈에 익은 네 글자가 내 시야에 들어왔다. “三聯書店”, 영화로도 제작되었던 대만작가 几米의 <向左走,向右走>를 발행한 출판사였다! 三聯書店은 30, 40년대 중국출판업계에서 전성기를 누렸던 生活書店, 讀書出版社와 新知書店 세 출판사가 1984년 10월에 홍콩에서 합병되어 출판, 발행, 판매, 서비스 등 다원화 경영을 추고하고 있는 새로운 문화출판회사이다. (홍콩지역에 15개가 넘는 지점을 갖고 있는 三聯書店의 더욱 상세한 정보를 원한다면, jointpublishing.com을 방문하라!)
서점 2층으로 향하는 층계에 비스듬하게 세워진 ‘The Age of Knowledge’ 광고판을 내 카메라에 담고, 곧바로 내가 좋아하는 디자인서적코너로 향했다. 3층 규모의 서점 안에는 법학에서 수의학까지 각 분야별로 굉장히 풍부한 양의 전문서적, 그리고 머리가 클로즈업된 귀여운 강아지 사진들로 가득 찬 <The Dog>사진집부터 세계 방방곡곡의 그래피티작품들을 모아놓은 <Graffiti World>까지 다양한 책들이 구비되어 있어 나에게 적지 않은 놀라움을 안겨 주었다. ‘다음 겨울방학에는 좀 더 충분한 시간과 자금을 투자해서 북경에서는 구경하기 힘든 책들을 마음껏 사야지!’라고 혼자 중얼거리며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부는 三聯書店을 걸어 나왔다.
许留山, bravo!
덥고 습한 날씨에다 꽤나 먼 거리를 걸은 후라 갑자기 갈증을 해소하고 싶었다. 때마침 내 눈에 들어온 건 바로 붉은색 간판에 금색글씨로 ‘许留山’ 이라고 써져 있었던(참고로 우측에서 좌측방향으로 읽어야 한다) 망고디저트전문점. 홍콩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는 동안, 나는 무척이나 홍콩냄새를 풍기는 이 허유산을 수 없이도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20 HK$를 내고 나는 芒椰奶西(Sago in mango and coconut milk)를 사서 절대 잊을 수 없는 맛에 잠시 동안 취해있었다. 이번 겨울방학에 홍콩에 다시 가게 된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바로 허유산을 향해 달려갈 것이다!
Asia’s World City
매번 홍콩을 갈 때 마다 느끼는 것, 바로 하버시티(Harbor City) 도로변에 세워진 가로등에 걸려진 광고슬로건처럼, 홍콩은 말 그대로 ‘Asia’s World City’이다. 몽콕(旺角)에서 네단로드(Nathan Rd.)를 타고 침사추이(尖沙咀)를 향해 걸어가는 동안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던 수많은 언어가 귓가를 스치고, 다양한 문화와 사상을 담고 있었던 여러 색깔의 눈동자들에 눈을 마주치며, 그리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상상을 초월하는 독특한 스타일에 감탄을 하는 동안, 나도 모르게 내가 낯선 외국도시를 혼자 걷고 있는 외국인이 아니라 홍콩이라는 국제적인 도시를 마음껏 거닐고 있는 세계인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영국의 오랜 식민통치를 받아왔던 홍콩은 아시아와 유럽을 이어주는 또 하나의 허브로서 동양문화와 서양문화가 한 곳에 조화롭게 융합되어 있는 곳이다. 활기찬 표정과 열정이 넘치는 곳, 언제나 나에게 새로운 매력을 느끼게 해주는 도시, 중국 속의 또 다른 중국을 체험해 볼 수 있는 기회, 홍콩이 이번 겨울에 나를 또 다시 유혹하고 있다.
글_ 한득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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