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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NA/라이프

영화 속 중국을 보다 -阳光灿烂的日子

[영화칼럼]
阳光灿烂的日子

   한국에서 멀쩡히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중국 유학을 결심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왜 하필 중국이며 어째서 중문과인가? 물론 그럴 듯한 대답은 수없이 만들어 낼 수 있었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1년쯤이 지난 올해 노동절 반 친구들과 진황도(秦皇岛)로 가는 길, 베트남 친구와의 대화를 통해 내가 무엇에 매료되어 이곳에 왔고 무엇을 탐구하고자 왔는지 조금씩 알아갈 수 있었다.
 
   그 친구는 귀가 따가울 정도의 소리로 전화 통화하는 중국인을 바라보며 자신은 중국 고대문화에 관심이 있고 고대문학을 좋아한다고 했다. 지금의 중국인들은 너무나도 세속적이며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며 고개를 저었다. 이런 식으로 말하는 중문과 학생은 비단 그녀만이 아니다. 중국인들조차 중국문학의 정수는 고대 선진양한(先秦两汉)에 있고 고대문화를 최고로 꼽는다.

   물론 경제적으로 낙후된 모습, 기본적인 소양조차 떨어지는 중국인들을 보면 나도 한 숨이 절로 나올 때가 많다. 넘치고 넘치는 사람들, 우리나라에서도 피 터지는 경쟁이라 하는데 중국은 말할 것도 없다. 돈 있고 머리 좋은 애들은 그 아이들끼리 경쟁하느라 힘들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한 끼 벌어먹기 살기 위해서 힘들다. 기본적으로 사람이 여유를 갖고 살기 힘든 곳이다. 그리하여 실제로 우매하고 어리석고 다듬어지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들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진실하고 순박하다. 그래서 오히려 가까이 하기 힘들고 정을 함부로 주기 어렵다.

   나는 오히려 다듬어지지 않은 사람들과 얘기하는 것을 즐기고 더 알고 싶어 한다. 그리고 어째서 라는 물음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면 그 곳엔《阳光灿烂的日子》가 있다. 중학교 시절《햇빛 쏟아지던 날들》이란 제목으로 접했던 이 영화는 내게 첫 번째 중국이었고 오랫동안 영화감독을 꿈꾸게 했던 보석 같은 영화이다.

   우리나라의 386세대가 80년대를 회고하고 역사적의미를 반추하는 작업을 이어가듯 중국 에서도 문화대혁명에 대한 역사적 해석은 계속되고 있다. 63년생인 강문(姜文)감독은《红高粱》《The Last Emperor》등에 출연한 대표적 배우이고 지금까지 배우로서 감독으로서 열정적인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그가 지금까지 감독으로 내 놓은《阳光灿烂的日子》,《鬼子来了》두 편 모두 용기를 내어 말해야 하는 멀지 않은 역사를 주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중국에게 가장 필요한 이런 목소리들은 중국 땅에서는 상영금지이다.

   《阳光灿烂的日子》는 문화대혁명 전후 북경의 열여섯 소년이었던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전쟁이 난무하는 시절 허무맹랑한 영웅주의는 소년들의 허영심을 충족시켜 주고 어른들이 없는 빈 도시는 이 대책 없는 소년들이 제왕이다. 빈곤함속에서 여름 내내 내리 쬐는 태양은 영화의 가장 훌륭한 배경이며 모든 사건의 발단이다. 모든 일은 숨 막힐 듯 내리 쬐는 태양을 양분으로 일어난다. 주인공이 남의 집 자물쇠를 몰래 따고 들어가는 취미를 갖게 된 것도, 몰래 들어가게 된 집에서 우연히 마주친 사진 속의 누나에게 반하여 열여섯 삶이 온통 그녀에 대한 어리 숙한 고백과 욕망으로 뒤 덥힌 것도, 가짜인지 진짜인지 스스로도 갸우뚱한 이 모든 것들을 지금 다시 고백할 수 있는 것도 모든 것이 없는 그 시절 유일하게 풍요로웠던 여름날의 아찔한 태양 덕이고 그 찬란한 날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중국에 유학 오기 전 내가 알고 있었던 중국은 이것이 전부였다. 전혀 학생답지 않은 학생들, 어설픈 의협심에 깡패 짓을 일삼고 영웅이 되는 소년들, 이런 상황에서도 아름다움에 매료되는 아이들 그리고 모든 것이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것을 보게 되는 어른이 되는 순간.

   나는 결코 우아한 중국을 바라고 오지 않았고, 세속적인 중국 사람들을 원망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각기 다른 사람들은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그들을 이해하려면 그들이 쓰는 언어를 이해해야 함은 당연하다. 그들이 전혀 고아하고 우아하지 않다면 그런 말을 써선 그들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중국 생활 2년 차를 맞은 지금 나에게는 조금 변화가 생겼다. 먼저 내가 좋아한다고 믿었던 다듬어지지 않은 혹은 문화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중국인들 혹은 그런 환경에 내가 환상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막을 여행하는 자는 사막의 아름다움을 찬양할 수 있지만 그 곳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분투한다. 중국에서 인력거를 타지 않는 호동(胡同)을 가보고 빈곤지역을 둘러 볼 때마다 처절하게 느끼게 된다. 영화처럼 아름답지 않다고. 그렇다면 나는 서양인이 동양에 품었던 오리엔탈리즘처럼 이방인으로서 환상과 제 멋대로의 해석을 해 댔던 것이었을까. 두 번째, 이번 학기부터 고대문학을 접하게 되며 그 고매하고 우아한 고대 중국정신에 조금씩 매료되고 있다. 이렇게 때문에 그 많은 사람들이 찬양했던 것 이었구나 느끼게 된다. 세속적인 것보다 아름답다고 느낀다.

   하지만 나는 내가 세속적인 혹은 빈곤한 중국인보다 우월하다고 느끼며 만족하진 않는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빈곤지역을 찾아다닐 것이며 이것은 얄팍한 동정심 때문이 아니라 진정으로 중국을 사랑하고 싶은 의지의 표현이다. 그리하여 균형적인 시각으로 중국을 바라보고 싶다.

   《阳光灿烂的日子》는 결코 아름답지 않은 시절에서도 인간은 아름다운 삶을 추구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다시 기억하고 반추하고 반성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화자의 목소리는 그렇기 때문에 담담하고 씁쓸하며 또 아름답다. 이 영화를 통해 지금까지도 영화에 대한 진심을 계속 지켜 가고 있는 강문(姜文)감독과 하우(下雨)의 초심을 확인하는 것도 매우 기쁜 일이다. 한 인간의 진심을 이해하기 위해선 그 사람의 역사를 들춰보면 된다. 귀한 영화가 중국 땅에서 정상적으로 상영되는 그 날을 기원하며 중국을 사랑하는 벗들에게 이 영화를 애써 권해 본다.   

글_차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