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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KU/캠퍼스&라이프

Everyone can cook!

      처음 혼자 부모님과 떨어져 기숙사 생활을 해 본 나와 친구들, 한달 용돈과 저번 학기 쓴 돈을 계산해보니, “헉!” 절로 나온다.

      ‘어디에 썼을까..’ 가만가만 따져보니, ‘냠냠!’ 역시나 식비다. 학기 초에는 어차피 다들 중국 음식이 안 맞는 것도 아니고, 열심히 아껴쓰자는 차원에서 다같이 북대의 식당을 전전하며 “여기가 맛있다, 저기가 맛있다” 하며 맛집투어(?)를 했었지만 오래 가지 못했다. 최첨단 에스컬레이터를 구비하고 있는 二教 맞은편에 있는 农园, 배고픔에 자전거 타고 신나게 달려가 밥을 배불리 먹어도 열심히 페달을 밟고 기숙사 돌아올 때면 배가 다 꺼져버린다는 슬픈 현실. 중국 음식을 배불리 먹어도 따스한 엄마가 해준 밥 한 숟갈에 사각사각 김치 한조각이 얼마나 그립던지.. 그러다 보니 시켜먹게 되고, 가끔 시켜먹던 것이 횟수가 늘어나면서 어느 새 우리의 지갑도 가벼워지고 있었다.

      중국 음식은 이제 질렸고, 한국 음식은 먹고 싶은데, 지출이 너무 큰 것 같고, 그래서 “그까이꺼~ 우리가 해먹어!” 이렇게 자신있게 외치긴 했는데, ‘우리가 한 거.. 먹을 수는 있을까?’ 라는 생각이 절로 따라 붙는데 어찌나 안타깝던지…

      사실 직접 해먹자고 한 게 이번 학기 들어서 처음 하는 말은 아니었다. 저번 학기 초에 얘기가 나왔다가, “설거지, 뒷정리, 요리는 누가해?” 라는 질문에 묻혀뒀던 것이었는데, 이젠 학기도 바꼈겠다, 뭔가 새로운 변화를 주고 싶었던 우리 샤오웬 패밀리는 이를 쉽사리 넘길리 없었고, 바로 실천하는 참다운 모습을 보였다. 한달에 1인당 200원씩 걷어서 공동식비를 마련하고, 장은 적어도 2주에 한 번씩 보자고 나름 철저한 계획도 세웠다.

      그리하여 시작 된 우리의 요리투쟁! 처음 모인 돈으론 냄비며, 후라이팬이며 이것저것 부엌기구를 장만하느라 정작 먹을 것은 많이 사지 못해 저번학기부터 냉장고에 푹 삭혀두던 김치를 개봉! 으아, 오래 삭으면 삭을 수록 유산균이 많아 가치가 높아진다는 김치, 균이 득실득실(?), 너무 가득하다. 코를 찌르는 냄새를 뒤로 하고, 김치부침개를 해먹기로 한 굶주린 우리는 일단 밀가루를 과다하게 넣고, 걸쭉해야 한다면서 물을 적게 넣어주는 센스를 발휘했다. 요플레보다 더 걸쭉한 부침개 반죽을 기름 한가득 두른 후라이팬에 굽고 있노라니, 부침개가 익는 시간이 왜 이렇게 느린건지.. 겨우 하나 익혀서 드디어 우리가 해냈다며 싱글벙글, 빠른 손놀림으로 입 안에 한 조각을 넣고 맛을 보는 그 순간, 우리는 서로 각자의 표정으로 교류를 하기 시작했고, 말할 때마다 밀가루 냄새가 술술 퍼져 나왔지만, 그래도 꾹 삼키고, 남은 부침개도 열심히 먹었다. 부침개 먹고 다음 날 아침, 얼굴 붓기는 처음이었다….

      약 2개월동안, 우리는 김치로 해먹을 수 있는건 수제비 빼고 다 해먹었고, 해먹었던 음식을 들자면 햄과 고기가 있어 맛있었던 김치볶음밥, 삼겹살김치찌개, 삼겹살 김치볶음과 가끔 밥하기 귀찮으면 해먹었던 매콤한 김치 비빔국수… 멸치와 다시다가 없어 버섯 우러낸 물로 열심히 끓였으나 끝내 엄마 손맛을 그립게 했던 된장찌개, 정체불명의 떡볶이 소스로 만들었으나 매콤달콤했던 두부조림, 하나도 안 매웠던 순두부찌개, 그리고 정말 맛있었던 카레와 짜장…

      김치부침개 이후로, 못 먹을 줄 알았던 우리의 음식은 해 놓으면 기가 막히게 맛있었고, 날로 날로 발전해가는 모습을 보며 자만하던 우리에게 가슴 아픈 실패작이 있었으니…

      한 근에 5원이란 싼 값에 혹해서 다듬어 달라는 것도 잊은 채 사왔던 오징어 한마리. 그 녀석이 그렇게 공포스러운 눈을 가졌을 줄이야..

      해산물 다듬는 건 다들 처음이라 흐물흐물한 살을 잡고, 겨우 적응해가며 내장 속을 빼내고 있는 도중, 순간 우리를 원망하는 듯 매섭게 노려보는 오징어 눈을 보고 기겁하는 줄 알았다. “악!! 얘가 날 보고있어, 아 어떡해!!!” 서로 자길 보고 있다며, 소리를 꽥꽥 질르다 오징어 눈 건드려서 마구 튀어나오는 먹물에 정신 없었지만,  온갖 소란을 다 피운 우린 언제 그랬냐는 듯, 두루치기를 가장한 난도질을 열심히 해주는 꼼꼼함을 보였다. 

      오징어 요리는 정말 프로처럼 잘 하고 싶어서, 인터넷에서 레시피를 찾아 따라 만들었는데, 맛이 영… 먹어본 맛이 아니었다. 그 이상한 맛이 비린내때문에 그런 줄도 모르고 설탕과 소금, 고추장, 고춧가루 팍팍, 결국 짠맛과 단맛이 심하게 교차하는 콩나물 오징어볶음을 만들어 냈다. 그..그래도 맛있다고 열심히 먹고, 그 날 밤 1.5리터 물 한병을 벌컥벌컥 들이킨 후에야 잠을 잘 수 있었다.

      마냥 쉬울 줄 알았던 요리, 이제 쉽지 않다는 걸 느끼곤, 먹을 수 있는 것만 해먹던 우리에게 자극을 주는 동기들의 요리가 있었으니!

      항상 함께 하는 동기들 중에 기숙사에 살지 않는 데도 기숙사에 사는 것 같이 느껴지는 두 동기가 있다. 어쩔때 보면 내가 내 방 오면서도 동기방 놀러오는 기분이 드니까! 이번학기 우리가 밥을 해먹으면서, 같이 해먹었는데, 항상 해주는 것만 먹었다고, 자신들도 요리솜씨를 뽐내보겠다며 했던 마약성분이 들어 있다는 HY표 청경채 버섯 두부피 조림과 춘천닭갈비도 울고 가는 YY표 닭갈비!

      원래 두 동기들도 잘 못한다면서 기대하지 말라고 만든 요리였는데,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정말 너무 맛있었다. 조미료 안 쓰고, 하나하나 정성의 손길이 가서 그랬을까, 분명 그 맛은 칭찬이 아깝지 않았다. 그 맛으로 인해 한 끼에 밥 네 그릇을 먹는 신기록도 세우기도 했다. 하하하하…;

      해서 먹는 것도 설거지하는 것도 다 귀찮아서 오래 가지 못할 거란 예상과는 달리, 우리는 꾸준히 잘 해서 먹었고, 지금도 이것 저것 색다른 요리를 시도해보며 “뭐 먹을까?” 라는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다. 이젠 ‘이것과 이것을 넣으면 궁합이 잘 맞겠구나!’ 하며 요리를 하는 우릴 볼때마다, “졸업할 때쯤이면 우리 시집가도 될걸?” 이런 심심한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물론 해 먹고 정리하고 귀찮기도 했지만, 하면서 같이 나눠먹는 즐거움도 있었고, 함께 밥 먹는 횟수가 늘어서 일까? 친구들과의 정이 더 끈끈해진 느낌도 받았다. 이젠 가족같이 너무 편해서, 같이 있는데 말을 오랫동안 안해도 아무런 어색함이 없는 그런 사이니까!

      처음엔 지속되지 못할까봐 아예 시작도 하지 않으려 했던 직접밥해먹기! 지금은 왜 진작에 하지 않았나, 이번 학기 생활을 더 알차게 만들어 준 이 시간과 나와 함께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친구들이 너무 고맙다.

      갑자기 대학에 와서 들은 말이 생각난다. “밥 정 정말 무시 못 해!” 그렇다. 식사를 함께 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서로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지고 친해진다는 건 어느 연구조사결과에도 있다고 들었다. 그런데 여기서, 단순히 밥을 함께 먹기 전에, 함께 만들어서 먹는다면 더 친해지지 않을까?

      그래서 Everyone can cook! 이 말, 북대인들에게도 해주고 싶다. 요리뿐만 아니라 여러 다른 방면에서 재미난 추억을 쌓을 수 있겠지만, 새로운 추억을 또 쌓고 싶다면, 요리를 잘하든 못하든 친구들과 옹기종기 모여서 같이 밥 한끼 해먹는 건 어떨까? (헉, 그런데 다들 요리하면서 재밌게 지내실 것 같은 이 기분은……)


 

글_ 손주희
국제관계학원 07학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