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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KU/칼럼

잃어버린 스페인 어를 찾아서

잃어버린 스페인 어를 찾아서

학교 방송 편집이 밤늦게야 끝났다. 시자오 수이 즉 샤워 물이 끊기는 시간까지 중국 아이와 시간 맞추느라 난리법석을 떨다가 보니 하루종일 쉐이크 두 개빼고는 아무것도 먹지 못해서 다 끝내고 남문 쪽에 있는 중국 식당에 밥을 먹으러 갔다.

 자습하는 학생들이 얼마나 많은지 불이 환한 식당 두 군데는 이미 모든 밥상이 책상으로 바뀐 채 꽉 꽉 차있어서 들어가자 마자 나와야 했다. 그리고 세번째 식당에서 빈 자리 하나를 어렵게 찾아냈다. 소고기 면을 시키고 할 말도 없고 그냥 가만히 앉아 있는데 그 아이가 말을 걸었다. ‘한국어 배우는 거 힘들지?’ 헐…내가 한국어과 학생인 줄 알았던 거다. 나는 그냥 ‘중국어가 좀 더 힘들어’ 라고 쌀쌀맞게 대답했고 그 후에 ‘너 한국인이야?’ 라는 말이 돌아왔다. ‘그래 나 한국인이다.’라고 마음 속으로 외치고 겉으로는 웃었다. 사실 나는 늘 중국인으로 오인받는다. 나는 오해 받는게 싫다. 중국인이 나쁘고 싫고 한게 아니라 그냥 오해 받는게 싫다.

 하여튼 그렇게 기다리고 있는데 또 말을 건다. ‘너 영어는 잘해?’ 나는 못 하지만 ‘이반반’ 이라는 말로 대신하고 ‘니너’ 하고 물어봤다. 봇물이 터진다는 말은 여기서 쓰겠지…그 애는 자기의 영어 실력과 인생 설계와 대학 생활 설계 그리고 좋아하는 영화까지 밥먹는 내내 열정적으로 얘기해 주었다.

 영어는 미국인도 미국에서 살았었냐고 물어볼 정도로 잘하며, 한번도 학원 같은 곳엔 가본 적이 없고 영화만 보고 배웠단다. 그리고 제일 좋아하는 영화는 매트릭스이고 매트릭스에 담겨 있는 철학에 대해 거의 30분 동안 강의해 주었다. 인생은 무조건 재정적으로 자립하는 것이 목표고 대학에서는 전공과 영어, 그리고 스페인 어를 배울거라고 했다. 그리고 강조했다.

 ‘언어를 배우는 건 저축하는거야. 단어 하나에 2원 씩 저축한다고 생각하면 돼. 끝까지만 배우면 절대로 손해 안 보고 절대 후회하지 않아. 스페인어는 2억명이 넘는 사람이 쓰는 말이고 이번 겨울 방학부터 학원 다닐꺼야.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특별한 사람이 되서 대학 문을 나설꺼야.’

 이 몇 마디 만이 내 기억에 남고 그가 강조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뭔가를 느꼈기 때문이다. 언어의 중요성, 그리고 스페인 어에 대한 작은 호기심…저축이라 저축 많이 해서 나쁠 건 없지…겨울 방학에 같이 학원 등록을 하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집에 돌아와서 얼른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았다. 스페인 어는 스페인, 아메리카 대륙, 아프리카에서 2억 5,0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쓰는 로망스 어 란다.

 그리고 스페인 어로 "Hola!(올라)" 는 한글로 "안녕!" 또는 "안녕하세요!"이라는 가벼운 인사말에 해당하며, 영어로는 "Hi!(하이)" 또는 "Hellow!(헬로우)"에 해당되는데, 주로 길을 가다가 사람들(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상관없이)과 서로 눈동자가 마주치면 "Hola!(올라)"라고 인사한다고 한다. ‘올라’라 왠지 ‘하이’나 ‘니하오’ 보다 끌린다.

 영어와 중국어를 제외하면 가장 많은 사람들이 쓰는 언어다. 갑자기 아버지 말씀이 생각났다. ‘영어, 중국어, 스페인어 세 가지면 세계 어느나라에 가도 다 말이 통해, 스페인 어는 스페인에서만 쓰이는 게 아니고 아르헨티나같은 많은 나라와 미국의 히스페닉계 등등 많은 사람들이 쓰는 언어다.’ 미국에 있는 이모가 스페인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바람에 한 동안 엄마가 스페인 어 배우라고 하신 것도 그리고 사촌들이  스페인 어를 배우는 것도 생각났다. 스페인 어는 늘 내 주위에 있었지만 내 무관심 속에 뭍혀 버렸었다. 하지만 이제 조금씩 그 중요성에 대해 인식하게 되었다.   

 나는 지금껏 중국어와 한국어 그리고 영어의 압박 속에서 다른 언어에 대한 생각은 할 여유도 시간도 없었다. 그리고 아마 많은 중국 유학생이 나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된다. 중국어, 영어 배우는 것도 이미 힘들다. 그런데 무슨 시간에 쓸지 안 쓸지 모르는 언어를 배우나 그리고 언어 배우는게 하루 아침에 되는 일인가 라고 생각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좀 더 넓은 세계를 보고 싶다면 그리고 더 넓은 세계를 자신의 무대로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스페인 어를 배우는 것을 고려해 볼만 하다. 조금의 관심을 가지고 스페인 음악을 듣거나 간단한 인사말 정도 배워두는 것도 친구를 사귀거나 스페인 어 권의 문화를 아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영어와 중국어 사이에서 뭔가를 잃어버렸다? 는 생각이 든다. 조금은 여유를 가지고 조금 생소한 스페인 어에 관심을 가지고 혹은 배워보는 건 어떨까? 프랑스어도 좋고 러시아어도 좋고 일본어도 좋다. 약간은 다른 언어로 눈을 돌려보자. 약간이 관심이 계기가 되어 4개 국어를 구사하는 특별한 사람이 될지 누가 아는가.


 

글_ 한혜연